서빙고주간 – 최*은
- 작성일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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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S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르는 문외한으로 그저 내가 정말 믿고 따르는 영적 선배인 1대1 양육자님의 권유로 덜컥 등록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있다. 면접을 봤을 때가 생생하다. 기도를 해보라고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날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주셨음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답답하고 힘든 결혼생활과 움켜쥐고 있던 내 일을 그만두고 양육에 감사하며 지냈지만 한번씩 밀려오는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1대1 양육으로 해결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시기였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이 곳에서 하나님 만나며 다시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혹시나 일할 기회가 오려나?라는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JDS를 시작했다.
첫날 줄지어 너무나 반겨주시고 안아주시는 간사님들도 충격이었지만 가장 앞에 걸려 있던 JDS플래카드 속 요한복음 말씀은 더 충격이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집에서 나만 희생하고 나만 죽은 것 같은 그 심정. 나는 이제 죽었구나…하며 내가 없어지는 듯한 그 경험이 너무 힘들었던 결혼생활이었는데 이 말씀이 정중앙에 떡허니 걸려있었다. 믿음의 길이란 광야를 걷는 것,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인 걸 머리로는 알지만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마음 속에서 너무 버거워멈추어 있던 나였는데 다시 그 말씀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그 말씀은 일단 제치고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는 분위기에 휩쓸려(?) 기분은 좋았고 우리조 간사님과 자매님들과 어색한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리고 일주일에 2번을 규칙적으로 어딘가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이 괜히 출근하는 기분도 들고 좋았다.
JDS 수업을 시작하며 부르는 찬양 속에서 나는 가사 하나하나에 감동이 밀려와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꺼이꺼이 울때도 있었다. 자격없는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마음껏 찬양하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조 자매님들과 QQ를 하고 모든 자매님들과 함께 나누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대학때부터 나름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나를 다시 정립해 가기 시작했다. 정말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하는 것도, 숙제에 허덕이며 시험을 치는 것도 부담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빼 놓을 강의가 하나도 없이 매 강의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다. 잠이 올법한 오후강의에도 잘 졸지 않아서 그것도 감사했다.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던 내 안의 문제가 강의들을 통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내가 순종하지 않고 있음을 다시 직면했다. 나는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진심으로 순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데 이미 마더와이즈와 1대1 양육을 통해 그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씩 바뀌어 가는 상태에서 JDS 강의를 통해 완전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지게 된 것 같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간 뒤 나만의 시간에 조이도우슨 기도로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를만큼 하나님께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게 하셨다. 시어머니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히신 분이 아니라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음을…내가 미워했던 존재들에 대해 진정한 용서를 하지 않았음도 깨닫게 하셔서 용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고나니 JDS 처음 들어왔을 때 눈에 들어왔던 한 알의 밀이 명확히 해석이 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나를 이 집에 한 알의 밀로 부르신 것이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하며 절망하던 그 때가 내 옛사람이 죽는 때였음이 깨달아졌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밟으면 되는 것을 나는 순종하는 거 같다가도 거부하고 있었고, 땅에 떨어져 썩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언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곤고한 때에 너는 믿음을 지켰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킨 게 없는 것 같던 그 시절의 나의 작은 몸짓, 손짓 하나도 하나님은 기억하셨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회개할 부분이고 주님께 꾸짖음까지는 아니지만 너 고쳐라~ 하실 줄 알았던 부분인데 너 많이 힘들었지? 잘 했다 내 딸아 하며 위로해 주심에 너무 감사했다. 대언기도를 받은 날은 가족여행 첫날이라 남편과 아이들은 먼저 여행장소로 가 있었고 나는 수업을 마치고 고속버스를 타고 갔는데 당장 내일 천국가도 나는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뛸뜻이 기쁘고 감사해 버스 타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울며 갔었다.
매 강의가 다 이랬다. 예배 때 울고 강의 때 울고 그러다가 자매님들과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고 밥과 간식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JDS는 영도 육도 같이 살찌워준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충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간사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어느새 누군가를 꼭 껴안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고 진심으로 안아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즈음 아웃리치 팀이 결성되었고 준비모임에서 함께 큐티나눔을 하고 찬양을 부르고 조이도우슨 기도를 하며 팀원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갔던 거 같다. 아웃리치를 다녀온 후 코로나에 걸려 헤롱대면서도 쉴 수 있음에 너무 좋았고 그냥 모든 것이 감사였다.
강의가 없는 어느 날 오전 문득 설거지를 하다가 아…내가 요즘 화를 안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르몬 탓인지 안좋은 영적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였는지 유달리 아침마다 심사가 뒤틀려 출근하고 학교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냈었던 나였다. 아웃리치 가기 전에도 크게 싸울뻔 했는데 하나님이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내가 먼저 사과하고 그냥 웃고 넘어가는 해프닝으로 끝난 적도 있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자연스럽게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아이들에게도 내 욕심의 말을 많이 줄이게 된 것 같다.
하나님의 훈련된 제자가 되기 위해 JDS라는 이렇게 빡센 과정을 거치는데 아이들도 완전 빡세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만큼 나에게 중1, 초3 그것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키우며 시간의 부족으로 숙제도 더 깊게 큐티도 더 깊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또 인도하심임을 고백하게 된다. JDS를 통해 확실히 자리잡은 것은 큐티와 말씀읽기이다. 다른 훌륭한 자매님들처럼 매일 한 건 아니지만 요즘엔 아침에 눈을 떠서 큐티부터 하게 된다. 말씀만이 살길이고 매일 내가 죽는 것이 주님 얼굴을 볼 수 있는 길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JDS 처음 들어올 때 다시 직장을 가려나 아니면 엄청 큰 비전을 하나님이 내게 심어주시려나…했던 내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나를 JDS에 그것 이전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이시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 사랑에 푹 잠기게 해서 하나님과의 올바르고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나를 부르셨다. 주님과의 기복있는 관계에서 이제는 그 기복의 폭이 확연히 줄어든 나를 본다. 그 어떤 것도 십자가에서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세워가고 있다. 이제 졸업하고 나서가 진짜이다. JDS에서 받은 하나님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눠주러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말씀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