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 the Word
자유를 섬기는 교회(눅4:16~30)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습니다. 죄 사함으로 참된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하나님만 예배하고, 자유의 무게를 질 사람을 키우며,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을 섬깁니다.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35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오늘 그날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유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는 방종과 같은 뜻이었고, 지금의 뜻은 성경이 보급되고 교회가 세워지면서 자리 잡았습니다. 유대인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망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유의 무게와 책임이 불안이 되자 복종, 파괴, 동조의 세 길로 도피했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독일 국민이 그 길을 모두 걸었습니다. 전체주의는 탱크로 들어오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들어오므로, 자유를 지키는 전선은 국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유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분은 홀로 자유하신 하나님뿐이므로, 피조물의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배반할 자유까지 주셨고, 선악과는 그 자유의 시험대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 하자 불안과 두려움, 소외감이 왔고, 기댈 곳을 찾아 독재자와 이념, 돈과 성공이라는 우상을 세웠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도 광야의 불확실함이 싫어 애굽의 고기 먹던 때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종의 습관은 한 세대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으니,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훈련으로 얻어집니다.
국가는 구원자가 아니라 정의 아래 서야 합니다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1943년 동경 기독교 대학 강의를 엮은 『정의와 사회 질서』에서, 자유를 삼키는 국가를 진단합니다. 국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기관이 아니며, 구원자로 믿는 순간 우상이 되고 국민은 그 종이 됩니다. 국가의 역할은 불의를 억제하여 자유를 누릴 집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자유는 국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몫입니다. 국가가 정의의 근원이 되려 하면 옳고 그름의 기준이 국가 손에 들어가고, 생각과 양심과 예배까지 요구하게 됩니다. 전체주의는 위에서 강요되기 전에 아래에서 초대되므로, 자유로운 나라의 참 성벽은 국가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국민입니다.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유 그 자체가 되신 분입니다 (18-21절)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61장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백성에게 가슴 뛰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해방받고도 눌린 자를 풀어 주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이사야 58장 6절을 덧붙여, 백성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보복의 날"은 읽지 않고 "은혜의 해"에서 멈추셨습니다. 보복의 날은 다시 오실 때 있겠지만, 지금은 은혜를 선포하십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의 '자유'는 24장 47절의 '죄 용서'와 같은 헬라어 단어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죄 사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만났고, 다시 접붙여진 사람은 우상이 필요 없어지며 세 가지 도피의 길에 들어서지 않습니다.
자유로 부르심은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26-30절)
갈라디아서 5장 1절과 13절에서 자유는 노예와 반대되는 자유인의 신분입니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과 주께서 값 주고 사신 이웃의 자유를 섬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사르밧 과부와 시리아 군대 장관 나아만 이야기를 꺼내시자 나사렛 사람들은 분노하여 낭떠러지로 몰았습니다. 둘 다 이방인이고, 나아만은 압제국의 군대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피해자 마음속의 분노를 아시고도 이를 드러내셨습니다. 광복절에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정당하지만, 미움의 포로가 되면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됩니다. 2007년 동경 러브소나타에서 하용조 목사님은 피해자의 오만을 회개한다고 고백했고, 많은 일본인이 복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의 세 가지 모습
첫째,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자유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예배하며 어떤 권력과 이념도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백성이 있는 한 국가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독점할 수 없어서, 독재자들은 교회를 길들이려 했습니다. 둘째,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을 키웁니다. 지도자를 우상으로 삼지 않고, 어떤 민족을 증오해 힘을 얻지 않으며, 다수가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길러집니다. 셋째,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을 섬깁니다. 가난한 자와 탈북민, 이주민을 섬겨야 하며, 남과 북이 80년 만에 달라진 이유도 자유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한 가지입니다.
Apply to Life
- 광복의 은혜를 기억하되 일본 민족을 증오하는 데 머물지 말고 미움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킵시다.
- 지도자나 이념, 돈과 성공을 우상으로 삼지 않고 다수가 아니라 진리를 따르며 하나님만 예배합시다.
- 죄 사함으로 얻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데 사용합시다.
-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을 키웁시다.
- 탈북민과 이주민을 비롯한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에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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