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시 42:1~11)

2026.05.31이재훈시편 42:1~11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사실을 삶의 체험으로 잇는 다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이며, 이 갈망이 깨어나는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는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연합의 사실과 체험을 잇는 다리, 갈망

지난 두 주간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살펴보았습니다. 로마서 6장은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 산 자임을 사실로 여기라 하고,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라고 합니다. 이 객관적 사실이 삶의 체험이 되려면 다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마음속의 갈망입니다. 신앙은 지식과 의지만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까지 아우르는 전인격적인 것입니다. 청교도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7년에 쓴 Religious Affections에서 정서적 갈망이 참된 신앙의 중요한 표지임을 가르치면서도, 모든 감정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니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한 말씀이 오늘 본문 시편 42편입니다.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입니다 (1절)

시편 42편은 사슴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의 명령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목마름 때문입니다. 사슴은 소리를 잘 내지 않는 동물인데 헐떡거린다는 것은 온몸이 물을 갈급해한다는 뜻입니다. 낙타는 몸에 물 저장소가 있어 한 번 마시면 오래 견디지만, 사슴은 수시로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로 한 주를 버티려는 신앙은 낙타 같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매 순간 그분께 연합되어 살아야 하는 사슴으로 지으셨고, 이 목마름은 결함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입니다. 병든 몸이 갈증을 느끼지 못하듯 하나님께 목마르지 않다면 영혼의 센서가 고장 난 것이며, 목마른 영혼이 오히려 건강한 영혼입니다.

선물보다 하나님 그분을 갈망합니다 (2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목말라합니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성전도, 예배 자체도 아니고 예배와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좋은 것을 갈망하면 그것이 없을 때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게 되고 쉽게 흔들립니다. 어린 자녀가 여행 다녀온 부모보다 선물을 더 기다리듯, 신앙이 어릴 때는 하나님보다 그분이 주시는 것이 더 큰 갈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 그분을 더 갈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러 나오는 발걸음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활동이 아니라 목마름의 발걸음이어야 합니다.

세 겹의 광야에서 깊어진 갈망 (3-11절)

이 깊은 갈망은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얻어졌습니다. 첫째는 사회적 광야입니다. 사람들이 밤낮으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조롱하여 그의 눈물이 음식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물리적 광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배 행렬을 이끌던 사람인데, 지금은 북쪽 변방 헤르몬산과 미살산 근처에 쫓겨나 있습니다. 셋째는 영적 광야입니다. "내 영혼아 왜 풀이 죽어 있느냐"라는 탄식이 5절과 11절에 반복됩니다. 이것은 갈망이 사라진 매너리즘이 아니라, 갈망은 있으나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만큼 누리지 못하는 침체이며,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광야가 그의 갈망을 더 깊게 했고, 시편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광야에서 쓰였습니다.

침체를 벗어나는 길: 기억하고 명령하고 찬양하라 (5-6절)

시편 기자는 침체에 머물지 않고 먼저 기억합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은 광야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이 하신 일과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 헌신하던 때의 감격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다음으로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영적 침체의 원인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낙심과 불평과 불안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고 끌려가기 쉽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새사람이 옛사람에게 "너는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고 말해야 합니다. 갈망이 무르익는 자리는 찬송입니다. "오히려 찬양하리라"는 고백처럼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찬양할 때 갈망은 제자도의 발걸음이 됩니다.

이 시편을 사신 분, 예수 그리스도

이 시편을 그대로 사신 분은 고라 자손도 다윗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조롱을 받으셨고 아버지께 버림받는 고난까지 겪으셨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며 높이셨습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통찰대로, 주님은 광야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이 시편으로 기도하시며 자기 영혼에게 믿음을 설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가신 걸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도 목마른 사슴처럼 이 땅에서 사셨으니, 우리도 목마른 사슴처럼 주님을 갈망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应用于生活

  •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보다 하나님 그분을 더 갈망하는 신앙으로 자라갑시다.
  •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예배가 아니라 목마름의 발걸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갑시다.
  • 광야와 침체 속에서도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합시다.
  • 낙심과 불안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지 말고 "내 영혼아,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고 내 영혼에게 말합시다.
  •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갑시다.

本摘要根据讲道字幕自动生成,可能与实际讲道有所不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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