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일본어예배

2026.09.06카와무라 요시키

사람을 구하시려고 직접 내려오신 하나님은 광야의 모세를 이름으로 부르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며 보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부족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오셨기에 전도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 가만히 앉아 계신 분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시려고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지금도 일하시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온누리 패밀리 축제에는 243명이 모였고, 대부분 세례받지 않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숫자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안심한 얼굴들과, 한국어 교실이나 어린양 클럽으로 이미 이어진 분들이 다시 돌아와 인사하던 모습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을 때 큰 기쁨이 생기고, 하나님은 그 기쁨을 함께 누리자고 우리를 전도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피곤해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한 가족에서 한 민족으로, 이집트의 압제

지금까지 본 창세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해 복을 주고 큰 민족을 이루며 그를 통해 세상을 복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구원이 한 가족에서 한 민족으로, 개인에서 민족 전체로 넓어집니다. 기근 때문에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로 옮겨 갔고, 하나님은 400년 동안 그들을 안전하게 지내며 큰 민족으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바로는 나라를 빼앗길까 염려해 그들을 노예로 삼아 채찍질하며 중노동을 시켰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구해 내시려고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광야의 모세를 이름으로 부르신 하나님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이집트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젊은 날 동족을 괴롭히던 이집트 사람을 죽인 뒤 동족에게도 거절당하고 도망쳐, 80세가 된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인생에 아무 기대도 없었을 그가 호렙산에서 타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만납니다. 하나님은 "모세, 모세" 하고 이름을 두 번 부르셨는데, 이는 친근함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어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도 죄 있는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께 닿아 심판받지 않도록 걸음을 멈추게 하신 배려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절정이 아니라 좌절의 밑바닥에서, 이름을 아는 친밀한 상대로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우리의 광야도 하나님과 먼 곳이 아닙니다.

고통을 보고 내려오셔서 약한 자를 보내십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인 과거 때문에 벌을 받을까 두려워 얼굴을 가렸지만, 하나님이 오신 이유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아픔을 아시고 그들을 건져 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보았다"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눈을 모아 지켜본다는 강한 표현이어서, 구원할 때를 기다리며 줄곧 지켜보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천사를 보내거나 하늘에서 지시만 하실 수도 있었지만 몸소 고통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기력을 잃은 80세의 실패자 모세에게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낸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강함이나 부유함, 지혜나 성격 같은 능력을 따지지 않고 어떤 사람이든 쓰십니다. 저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목사이기에 이 은혜의 선택이 큰 위로가 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나는 있는 자

모세는 "나는 누구이기에" 하며 곧바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바로는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리던 절대 권력자였고,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그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네게 능력이 있다"가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모세가 이름을 묻자 하나님은 "나는 있는 자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지만, 이 이름의 하나님은 시작이 없이 늘 계시며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신 유일한 근원이십니다. 모세는 불안과 무례한 물음까지 솔직히 쏟았고, 하나님은 그 모두에 성실히 답하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고민과 믿어지지 않는 마음을 정직하게 쏟아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끝까지 함께하십니다

이 "나는 있다"는 이름을 훨씬 뒤에 자신에게 적용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뜻만이 아니라,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자신이라는 선언입니다. 백성의 고통을 보고 내려오신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는 없으셨지만 우리와 같은 피곤과 좌절과 아픔의 밑바닥을 걸으시고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하시며,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힘은 없어도 "나는 있다" 하시는 분이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应用于生活

  • 사람을 구하시려고 직접 내려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치지 말고 이어 갑시다.
  • 인생의 광야 같은 자리에서도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 능력이 없다고 물러서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하나님을 의지해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 믿음의 고민과 믿어지지 않는 마음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쏟아 놓읍시다.
  •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과 함께 전도의 길을 걸어갑시다.

本摘要根据讲道字幕自动生成,可能与实际讲道有所不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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