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슥3:1-10)

2012.09.09이재훈스가랴 3:1-10

하나님은 죄와 허물이 있는 백성을 사탄의 고소에 따라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회복시키십니다. 이 은혜를 붙잡을 때 새로운 시작이 열립니다.

사탄의 고소는 정당한 근거를 가진 듯 보인다 (1-3절)

스가랴가 본 환상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고, 사탄은 오른쪽에 서서 그를 고소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본래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므로 이는 곧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 부정하다는 상징입니다. 사탄의 고소는 율법이라는 정당한 근거를 가졌지만, 그 동기는 백성을 무너뜨리고 회복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근거만큼이나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비판이 모두 사탄의 일은 아니지만, 무너뜨리기 위한 고소는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을 사탄에게 내주지 않으신다 (2절)

하나님은 사탄을 꾸짖으며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여호와가 너를 꾸짖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백성에게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죄와 허물보다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3-34절에서 말하듯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의 반역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스스로 무너뜨릴 권한이 없습니다. 내 백성은 내가 처리한다는 것이 선택의 의미입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2절 후반에서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불에서 꺼냈다는 것은 구원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심판으로 징벌하셨지만 완전히 소멸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꺼내 주셨습니다. 그을림이 남아 있는 우리를 사탄은 버리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고쳐서 쓰신다고 하십니다. 구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은혜 (4-5절)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시고, 내가 네 죄를 없애 버렸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눈감아 주는 은혜가 아니라 고소의 근거를 해결하시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처럼 우리의 의로운 행위조차 더러운 옷과 같지만, 사람은 스스로 옷을 벗고 입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히신 것은 한 생명이 죽어야 한다는 희생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도가 흰옷을 입는 것도 어린 양의 보혈로 씻긴 옷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때 사탄의 고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순종은 회복된 자에게 주어지는 사명이다 (7절)

하나님은 옷을 입힌 뒤 명령을 주십니다. 내 길로 행하고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내 집을 다스리고 내 뜰을 돌보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순종은 의롭게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이 회복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해졌음을 8-10절에서 순, 종, 돌이라는 세 이름으로 보여 주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어린 양의 보혈로 씻긴 옷을 입혀 주신 은혜를 붙듭시다.
  • 사탄의 고소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셨다고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 사람을 세우기 위한 건설적 비판을 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고소는 삼갑시다.
  •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집을 돌보는 삶을 살아갑시다.
  • 이웃을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여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교제하는 공동체를 세워 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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