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복의 역설 (눅 6:20~26)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과 화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지금이 전부가 아닌 그날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가는 길이 복이라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진리는 우리 자신의 모순 때문에 깨닫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참된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진리는 세상의 관습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둘째, 우리 인간 자신이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사랑과 미움, 믿음과 의심이 함께 있고,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인격을 뜻하는 person의 어원 persona가 가면을 뜻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우리는 가정, 교회, 직장에서 각각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런 모순된 존재이기에 진리를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말씀도 세상의 판단으로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역설은 모순처럼 보여도 진리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자기 생명을 잃는 자가 얻고, 낮추는 자가 높아지며,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역설입니다. 역설이란 모순처럼 보이고 부조리해 보이는 것들을 함께 모아 진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해 역설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고 핍박받는 자를 복이 있다고 하셨고, 부유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를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가난은 복이 됩니다 (20-21절)
20절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가난 그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 순종의 축복으로 말한 부유함, 배부름, 칭찬, 기쁨, 웃음이 여기서는 화의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들을 복의 목록에 올리신 이유는 제자와 하나님 나라라는 말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가치관이 뒤집히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돈지갑의 회심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가난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복입니다.
지금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21-26절)
복이 있는 삶과 화가 있는 삶을 가르는 단어는 지금과 그날입니다. 지금만 배부르기를 원하고, 지금만 부유하기를 원하며, 지금에만 갇혀 사는 인생에는 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함과 배부름, 웃음 그 자체를 죄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신 분이 배부름 자체를 정죄하실 리 없습니다. 문제는 웃음의 이유입니다. 부활의 소망과 다가올 그날을 바라보는 웃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날을 기대하는 사람은 가난과 굶주림과 눈물 속에서도 상이 크다는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 화가 될 수 있습니다 (26절)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 화가 된다는 말씀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26절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구약의 거짓 예언자들은 듣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메시지를 전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에게는 아부와 거짓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헌신과 희생과 진실과 정직 때문에 받는 칭찬인지, 아첨과 거짓 때문에 받는 칭찬인지입니다. 아부와 거짓으로 칭찬받는다면 그것은 그날이 없는 인생의 화입니다. 지금의 배부름을 추구하다 배부름이 우상이 되고, 지금의 부유함을 추구하다 부의 노예가 된다면 그 부유함과 배부름은 화가 됩니다.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배척은 복입니다 (22-23절)
복이 되는 배척은 인자, 곧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배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기 때문에 세상에서 배척받는다면 그것은 복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서 비난받는 것을 모두 예수님 때문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미움을 받는지, 아니면 우리의 잘못 때문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역설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역설입니다. 어거스틴이 기도한 대로 주여 나로 죽지 않도록 죽게 하소서라는 고백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갑시다.
- 지금의 부와 배부름과 칭찬에 갇히지 않고 그날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 우리의 웃음이 부활의 소망에서 나오는지 돌아봅시다.
- 칭찬받는 이유가 진실과 정직인지, 아부와 거짓인지 점검합시다.
-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배척이라면 기쁨으로 받아들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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