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구원의 보장과 회복의 기쁨
구원은 보혈과 부활의 생명이 채워진 복음의 저수지에서 값없이 쏟아지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쥐어짜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 성령 충만을 누리며,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따라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은 보혈과 부활의 생명이 채워진 하늘의 저수지입니다
복음은 상상할 수 없이 큰 하늘의 저수지와 같습니다. 이 저수지의 물에는 두 가지 성분이 섞여 있는데, 하나는 십자가의 보혈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십자가는 어둠의 세력과 죽음의 세력, 그리고 죄를 철저히 파괴합니다. 그러나 파괴된 자리에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 새로운 축복을 세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부활의 역할입니다. 파괴와 세움,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며 두 역사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이 이 저수지에 충만하여 하늘에서 빛처럼 쏟아집니다.
구원과 축복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물은 잡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것이고, 축복도 우리가 끄집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목마른 사람들에게 돈 없이 와서 물을 마시고 값을 치르지 말고 먹으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하거나 선행을 하거나 헌금을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믿고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을 쥐어짜듯 구하지 말고 그냥 받으십시오.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지지 말고 못나고 부족한 그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받을 때 은혜가 임합니다.
성령의 물이 임하면 죽은 것이 살아나고 생명이 흘러넘칩니다
에스겔 47장은 성전 밑바닥에서 물이 흘러나와 발목에서 무릎, 허리, 가슴을 지나 결국 목까지 차오르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 물이 불어나면 막을 방법이 없고, 결국 물에 빠져 헤엄을 치게 됩니다. 성령의 축복도 이와 같아서 그 강가에 나무가 자라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 죽은 바닷물까지 살립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가는 곳마다 죽은 것이 살아나고 가정이 회복되며 저주가 사라집니다. 이 물은 아끼지 말고 마음껏 쓰십시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내 것과 본질이 다르니 믿고 따릅시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고, 하나님의 길과 내 길도 다릅니다. 이 차이는 비교급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차이입니다. 내 생각과 내 길은 좋아 보여도 틀린 길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이상해 보여도 옳은 길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높으니, 하나님과 경쟁하거나 시비를 걸 대상이 아니라 신뢰하고 믿어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공허하게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어길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회복의 기쁨: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자라는 새로운 차원의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기쁨으로 나아가고 평안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산과 언덕이 환호성을 터뜨리고 들의 나무들이 손뼉을 치듯,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자라고 찔레나무 대신 화석류가 자랍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백성을 드높이는 영원한 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나갈 때 비참함과 우울함만 상상하지 말고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마음에 그리며 사십시오. 슬픔은 기쁨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바뀝니다. 죄 지은 사람은 그 죄를 버리고 나쁜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초대에 응답하십시오.
삶에 적용하기
-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쥐어짜지 말고 믿음으로 받읍시다.
- 목마른 인생의 해답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생수를 마십시오.
- 성령 충만을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 내 생각과 내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따릅시다.
- 죄와 나쁜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옵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