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들 입니다 (눅 19:9~10)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고, 기쁘게 영접하며, 수군거림에 흔들리지 않고, 회개로 열매 맺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름답게 살지 못한 삭개오
삭개오는 로마 치하에서 세금을 걷던 세리장이며 부자였습니다. 정해진 세금에 더해 사적으로 능력껏 채워 넣는 일을 했기에 침략자의 앞잡이, 부정축재자로 여겨져 호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청결한,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구원을 몰라 그 이름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그 은혜를 잘못 해석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면 삭개오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이 오히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4절)
삭개오는 예수님이 궁금해 먼저 달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키가 작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그 한계를 이겨 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 곧 긍정적인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사람이 편찬한 연구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기록된 생명의 말씀을 직접 보고 듣고 적용할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고 따르느냐에 따라 십자가 은혜의 가치와 능력이 달라집니다.
기뻐하며 지체 없이 영접합니다 (5-6절)
예수님은 위를 쳐다보시며 삭개오를 부르고 그의 집에 묵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대해 준 사람이 없었기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 기뻐하며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부름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자리인 집에 함께 머무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가정과 직장의 시간이 훨씬 길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은 내 상황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맞추어 따라가야 하며, 말씀 앞에서는 지체하지 말고 바로 믿고 행해야 합니다.
수군거림에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7절)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며 수군거렸습니다. 수군거림은 속삭이며 투덜거린다는 뜻이고, 원뜻은 새나 곤충이 앵앵거리는 소리입니다. 요한복음 6장 41-43절에서 예수님도 수군거림을 받으셨고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29절과 32절도 수군거림을 좋지 않은 일로 말합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속삭였고 하와가 아담에게 권해 죄가 들어왔듯, 구원받은 사람은 수군거림과 유혹을 벗어나려 단호해야 하며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중보해야 합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8-10절)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속여 얻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회개는 잘못을 시인하고 몸과 마음과 행동을 고치는 것이며 싸구려가 아닙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재산권과 소유권까지 내려놓는 것이었고, 주님이 그의 만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회개를 고백하자 예수님은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잃어버린 자라 하며,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 24절 말씀처럼 잃은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구원은 미래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 실천적 결단으로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직접 보고 듣고 적용합시다.
- 말씀을 기쁨으로 듣고, 내 상황에 맞추지 말고 지체 없이 순종합시다.
-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지 돌아봅시다.
- 수군거림과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나라와 교회와 성도를 위해 중보합시다.
- 잘못을 시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을 고치는 진정한 회개를 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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