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의심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11:1-6

세례 요한조차 감옥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의심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꾸짖지 않고 말씀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의심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나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의심보다 크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말씀과 삶이 함께 가는 사역의 본질 (35절)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은 기적에만 있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었습니다. 기적은 말씀에서 나온 것이지 기적 때문에 말씀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은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전합니다. 교회 역시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데 본질이 있으며, 말씀 없는 구제와 봉사와 전도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말씀은 삶과 언제나 연결되어야 하며, 삶과 이어지지 않는 복음은 공허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정직하게 믿을 때 찾아오는 고난

예수를 적당히 믿을 때는 고난이 크지 않지만, 정직하게 복음의 핵심을 깨닫고 그대로 살려고 결심할 때 내적, 외적 갈등과 도전이 찾아옵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세상 사람과 본질적으로 달라야 하며, 그 다름을 느낄 때 구분이 시작됩니다. 얼렁뚱땅 타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정신 차려 똑똑하게 예수를 믿으려 할 때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세례 요한의 의심과 그 이유 (2-3절)

예수님에 대한 첫 의심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에게서 나왔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던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며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며 하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감옥에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이유로 첫째, 헤롯의 미움을 받아 캄캄하고 고문이 있는 감옥에 오래 갇힌 환경의 악조건이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직접 깊이 만나지 않고 소문과 간접 경험으로 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셋째, 정치적 해방자를 기다리던 잘못된 메시아 인식이 있었습니다.

의심을 꾸짖지 않고 말씀으로 격려하시는 예수님 (4-6절)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가 들은 보고 있는 것을 전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이사야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말에 무너졌을 때 하나님이 야단치지 않고 먹이고 재우셨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피곤한 자를 위로하십니다. 신앙에는 리듬이 있으니 높을 때 교만하지 말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절망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곁에 계실 수 있습니다.

의심은 있을 수 있으나 주님의 사랑이 더 크다 (6절)

누구도 영원히 의심 없이 믿을 수는 없으며, 베드로조차 고백 직후 사탄이라는 꾸중을 들었습니다. 신앙 고백을 이루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인간적 약점을 인정하고, 목사나 교회의 허물 때문에 실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사와 교회는 양면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의 공동체이지만, 그 때문에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의심보다 훨씬 크므로,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의심이 찾아올 때 자신을 심각하게 정죄하지 않고, 먹고 쉬며 주님께 위로를 구합시다.
  • 말씀을 직접 읽고 무릎 꿇어 주님을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세워 갑시다.
  • 신앙의 높낮이가 있음을 알고, 높을 때 교만하지 않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주님을 바라봅시다.
  • 사람의 말과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나 때문에 시험 들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듭시다.
  • 교회와 목사의 연약함을 넘어서서 주님을 더 충성스럽게 섬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