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세상의 마지막 밤에 (눅 21:29~36)
세상은 점점 완전을 향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마지막 밤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땅을 바라보지 말고 머리를 높이 들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진보의 신화가 아니라 재림의 소망을 붙잡읍시다
오늘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무서운 이단은 세상이 완전을 향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진화와 진보의 사상입니다. 이 신화는 다윈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에 있었지만 교만한 우월의식에 불과합니다. 과학기술은 발전할지 몰라도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있고 과거의 아름다운 가치들은 잃어버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다봐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예수님의 도래입니다. 세상이 믿지 않고 과학적 판단에 맞지 않는다 해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미래의 주인공이 되셔야 합니다.
두려운 날에도 머리를 높이 드십시오 (25-28절)
누가복음 21장은 세상의 마지막 밤에 일어날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보여줍니다. 해는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지며 온 지구와 우주에 대격변이 일어나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높이 들라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며 두려워 떨지 말고, 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너희의 구원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잃지 말고,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달아야 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영혼의 닻을 내립시다 (29-34절)
무화과나무에 잎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이, 그때와 시기는 아무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징조를 통해 그 때가 가까웠음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와 전쟁, 기근, 지진은 끊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재림과 연결시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재림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방탕함이나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짓눌리게 됩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은 이 소망이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과 같다고 말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그날이 덫처럼 닥치지만,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닻이 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이 땅을 사는 사람입니다 (35-36절)
항상 깨어 있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밭을 샀습니다. 멸망을 알면서도 땅을 산 것은 하나님이 이 땅을 반드시 다시 구속하실 것이라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또한 깨어 있다는 것은 어두운 방에서 옷을 입듯 어둠 속의 기준이 아니라, 밝은 빛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내 영혼의 옷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진보 신화에 속지 않고 예수님의 재림을 우리의 미래로 믿읍시다.
- 땅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 머리를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봅시다.
- 징조가 보일 때마다 재림과 연결해 깨어 있는 마음으로 시대를 분별합시다.
- 재림의 소망을 영혼의 닻으로 삼아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에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합시다.
-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구원받은 사명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 참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