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설득 (삿 6:11~16)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기 전에 말씀으로 찾아와 사람을 바꾸십니다. 겁쟁이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며 "내가 함께한다"고 설득하시는 분입니다.
비교·경쟁·고립이 만든 상처 입은 세상
올 3월 한국 리서치 조사에서 세 명 중 두 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답했고, 79%는 10년 뒤 그런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원인으로는 91%가 비교와 경쟁과 고립을 꼽았습니다. 올해 5월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박보영 씨는 상을 받고도 경쟁이 싫었고 매 순간 가치와 쓰임을 증명하기 힘들었다며 울었습니다. 저도 신대원 입시학원에서 소명받은 80명이 2.5대 1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약한 것은 연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을 나눈 형제가 서로 약탈하는 비극 (1-6절)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생명을 나눠 가진 존재임을 보여 주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사기 6장에서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집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이고, 동방으로 보내졌던 사람들이 수백 년 뒤 형제의 밭을 털러 온 것입니다. 이들은 씨를 뿌리게 둔 뒤 소출과 양, 소, 나귀까지 모두 쓸어갔고, 이스라엘은 산과 동굴에 숨어 살았습니다. 생명을 나눈 사람들끼리 약탈하는 세상이 된 것이 이 본문이 보여 주는 타락의 깊이입니다.
회개는 내가 지은 집을 불태우는 것 (6-10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지만, 사사기 2장의 보김에서도 그들은 울고 제단까지 쌓았으나 다음 세대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습니다. 헬라어 메타노이아는 감정을 넘어 삶이 실제로 변하는 것이고, 히브리어 슈브는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슈브의 글자 쉰은 불, 베트는 집을 뜻하니 집이 불타는 그림이 됩니다. 언약 위에 세워지지 않은, 내 힘으로 쌓은 집을 불태우고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의 집을 세워 가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도 아파서 지르는 소리였을 뿐 보김의 울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원자보다 먼저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번에는 사사가 아니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칼을 든 구원자를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든 선지자를 보내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역사를 다시 읊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단은 미디안이 강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풀어 주시기 전에 왜 이 자리에 왔는지 먼저 알려 주십니다. 사사기가 같은 패턴을 반복한 것은 건져 주셔도 사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시 구원하지 않고 말씀으로 사람을 바꾸시는 방식이 더 깊은 사랑입니다.
겁쟁이를 큰 용사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믿음 (11-13절)
기드온은 바람이 필요한 밀 타작을 바람이 들지 않는 포도주 틀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숨은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큰 용사여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조롱이 아니라 기드온 안에 감춰진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 믿음은 사과씨 하나로 과수원을 보는 것인데, 여기서 믿음을 가진 쪽은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자격은 이력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시는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흔들리는 시몬을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로 부르신 것도 같습니다. 교육을 뜻하는 라틴어 에듀카레는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낸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기드온 안의 소명을 끌어내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며 신정론으로 따졌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일어선 기드온 (14-16절)
하나님은 기드온의 하소연에 변명하지 않고 이 너의 힘으로 가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부르고 명하셨다는 뜻이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셨다면 책임은 맡긴 분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집안과 자신이 가장 작다며 내면만 들여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작지 않다고 하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임마누엘이요 그가 붙들 힘입니다. 여호수아의 이름도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제단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짓고, 아버지 집의 바알 제단을 망설임 없이 헐었습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이 찍어내는 자, 우상의 제단을 헐어 버리는 자라는 뜻이니, 하나님이 그 안의 용사를 끌어내신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연약함과 이력을 보며 절망하지 말고, 나를 믿어 주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봅시다.
- 왜 구원하지 않으시느냐고 불평하기보다 먼저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귀를 기울입시다.
- 눈물과 뜨거운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 없이 쌓은 내 집을 불태우고 삶의 열매로 회개합시다.
- 하나님이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실 때 내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 내 삶을 두렵게 하는 바알의 신상과 아세라상을 찍어 버리고 여호와 샬롬의 제단을 쌓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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