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뿔을 꺾으시는 하나님 (슥 1:18-21)

2012.08.26이재훈스가랴 1:18-21

하나님은 스스로 뿔을 높이 든 교만한 힘과 권세를 반드시 꺾으시며, 우리 안의 교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날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적을 두려워하기보다 내 안의 교만을 경계합시다.

하나님은 회복의 문을 열어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실패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회복을 기대하시고 회복의 길을 이미 열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성적 판단으로만 하나님을 제한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식어지고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림으로 보여 주신 말씀은 오래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무시한 신비주의도, 하나님의 초월하심을 부정하는 것도 모두 잘못된 신앙입니다.

네 뿔을 꺾는 네 대장장이의 환상 (18-21절)

스가랴가 본 두 번째 환상에는 네 개의 뿔이 나타났고, 천사는 이 뿔들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버린 나라들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네 명의 대장장이는 이 뿔들을 꺾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입니다.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하며, 하나님이 높이 드시면 귀하게 쓰이는 좋은 뿔이 됩니다. 그러나 21절의 뿔은 하나님이 들어 올리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들어 올린 교만한 뿔입니다. 네 개의 뿔이 사방의 나라들을 뜻하듯, 이는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는 대적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네 명의 대장장이는 예외 없이 이 교만한 뿔을 꺾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교만한 나라는 하나님이 반드시 꺾으십니다

성경에서 악인에게 뿔을 들지 말라는 말씀은 스스로 높이는 교만을 경계합니다. 하나님은 징계의 도구로 열국을 쓰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보다 더 악하고 교만하게 징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셨습니다. 아수르가 바벨론에게, 바벨론이 메대 페르시아에게, 페르시아가 그리스에게,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게르만 민족에게 꺾인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오바댜가 선포한 것처럼 하늘 높이 둥지를 틀어도 하나님은 거기서 끌어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과 대적을 핑계 삼지 말고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대적보다 내 안의 교만을 두려워하라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 두려워한 것은 자기 안에 솟아나는 교만의 뿔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내 안의 교만은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 예수님의 생명이 죽을 몸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미워하시며, 잠언 6장과 8장에도 교만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교만은 자기를 속이고, 공동체를 흩어지게 합니다.

겸손한 눈으로 하나님을 올려다봅시다

교만은 눈빛에 드러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교만한 눈입니다. 자기 눈빛을 자기는 모르기 때문에 교만은 자기를 속입니다. 건강한 자기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자기만 사랑하여 자기를 숭배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나이나 지식이나 재물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질병입니다. 한 사람의 교만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흩어지게 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올려다보는 겸손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안에 솟아나는 교만의 뿔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 주변의 대적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만 바라봅시다.
  • 나를 괴롭히는 교만한 사람들의 일을 하나님께 아뢰고 맡깁시다.
  • 내 눈빛과 말투가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 공동체에 참여하여 함께 겸손하게 믿음의 여정을 걸어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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