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여호와의 열정 (사 9:1~7)
여호와의 열정은 절망 속의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나님의 아들을 연약한 아기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은 빛과 큰 기쁨으로 오셔서 영원한 평화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가장 절망적인 때에 주어진 메시아 예언
예수님의 출생은 직접 언급된 것만 200여 개가 넘는 예언 가운데 예고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모르는 이들이 받은 예언이 한 분에게서 이루어진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예언들의 공통점은 역사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희망적인 복음으로 약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예언은 타락 직후 창세기 3장 15절에 주어진,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무너뜨린다는 원복음입니다. 예언은 다윗 왕국이 멸망 가운데 있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시대에 가장 집중되었고, 그래서 대림절에 이사야서를 많이 살핍니다.
가장 모욕받은 갈릴리에 빛이 비쳤습니다 (1-2절)
이사야 시대에 아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남왕국 유다까지 위협했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갈릴리 주변의 가장 비옥한 땅이었기에 먼저 점령당했고, 아시리아는 강제 이주와 혼혈 정책으로 민족 정체성을 말살했습니다. 그 모욕과 수치의 땅에 빛이 '비칠 것이다'가 아니라 '비쳤다'는 완료형으로 예언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갈릴리에서 보내신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 13-17절은 가버나움에 사신 일이 이 예언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이 빛은 갈릴리만이 아니라 전쟁과 죄와 죽음의 두려움 아래 있는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거저 주어진 추수와 전리품의 기쁨 (3절)
큰 빛이 임하니 큰 기쁨이 따라옵니다. 이 기쁨은 추수의 기쁨과 전리품을 나누는 기쁨으로 표현됩니다. 추수의 기쁨은 농부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인내하며 얻는 것이고, 전리품의 기쁨은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병사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수고와 싸움을 하지 않고도 이 기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고하는 농부처럼 고난받으시고 싸우는 군사처럼 영적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행함이나 성취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아도 기쁨이 샘솟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에 기대지 않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연약한 아기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6절)
6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큰 기쁨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한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이루어진 사건으로 고백하는 감격이 담겨 있습니다. 이 아이는 한 가정이나 한 나라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메시아는 아담처럼 성인으로 오실 수도 있었지만, 도움 없이는 죽는 가장 연약한 사람의 아기로 오셨습니다. 말과 염소는 태어나 곧 걷지만 사람의 아기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은 태아 때부터 상처를 받고 죄 가운데 자라는데, 태아로 오신 예수님은 그 상처까지 담당하시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친구가 되십니다.
네 가지 이름과 평화의 왕의 통치 (6-7절)
그 아이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입니다. 기묘자 모사는 놀랍고 경이롭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로 번역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골로새서가 말하듯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영원하신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고 공급하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평화의 왕은 힘과 무력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와 평화로 통치하십니다. 아시리아, 페르시아, 바벨론, 로마 같은 제국은 모두 무너졌고 세계 역사는 제국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시고, 교회는 그 나라를 위해 존재합니다.
여호와의 열정이 이루신 구원 (7절)
7절은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를 이루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열정은 죄와 반역으로 어둠과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여 완전한 통치로 인도하시려고 한 아이를 보내신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보내셨으나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의 지혜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셨습니다. 교회는 때로 쇠퇴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나라는 결코 쇠퇴하지 않습니다. 성탄은 트리가 주인공이 되는 절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크게 보이고 그분의 놀라우심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는 복된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에 적용하기
-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십자가와 부활로 주어진 기쁨 가운데 걸어갑시다.
- 세상과 타협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 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나아갑시다.
- 아기로 오신 예수님께 내 상처와 문제를 맡깁시다.
- 트리보다 예수님이 크게 보이는 성탄을 맞이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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