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양육
The Heartburn We Should All Long For (Luke 24:21~35)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대본과 같아서 우리는 그 안에서 제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처럼 슬픔 가운데서도 말씀을 풀어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시는 주님을 만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뜨거움은 공동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슬픔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21-24절)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뒤 로마의 억압에서 자신들을 구해 주실 줄 알았던 소망이 무너졌습니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았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부활 사건은 일어났지만, 그들의 마음에서는 아직 주관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슬픔과 혼란 속에 있는 사람도 이 자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슬픔을 드러내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함께 걸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삶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중략)
말씀을 풀어 주시는 주님이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25-27절)
예수님은 두 제자를 책망하듯 부르시며,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했음을 모세와 모든 선지자로부터 풀어 주셨습니다. 두 제자는 자기들이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에도 주님이 함께 걸으시며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열릴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바르게 보게 됩니다.
떡을 떼실 때 눈이 열리고 주님을 알아봅니다 (28-31절)
두 제자가 함께 먹자고 강권하자 예수님은 식탁에서 떡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예수님은 곧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게 떠나신 이후에도 주님을 알아볼 길은 주님의 식탁, 곧 성찬 안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1세기 공동체의 full-blown 식사 안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기념하였고, 성찬은 우리가 주님의 몸을 실제로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이 식탁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말씀과 식탁이 함께할 때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두 제자는 길에서 주님이 말씀을 여실 때 마음이 뜨거웠다고 고백했고,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엠마오로 도망치던 방향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말씀과 떡이 모두 필요합니다. 말씀 없이 떡만 나누면 모임은 그저 먹는 자리가 되고, 떡 없이 말씀만 공부하면 죽은 정통이나 메마른 학문에 머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리시며,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나누고 서로를 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Apply to Life
- 슬픔과 혼란 속에 있는 이들이 교회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갑시다.
-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열어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 성찬을 귀하게 여기며, 떡과 잔을 통해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말씀과 성찬이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품고 세워 가기를 힘씁시다.
- 우리 마음이 주님 앞에서 뜨거워지는 경험을 기다리며 예배와 삶에서 주님을 찾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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