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4] 어디에서 예수를 찾는가? (눅 2:41~52)
예수님의 임재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 정과 틀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과 일, 곧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아버지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이 일행 중에 있으리라는 추측 (41-45절)
열두 살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러 요셉,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예수님이 일행 중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하루 길을 갔습니다. 절기 행렬은 친척과 동료가 어우러진 큰 무리였고, 예수님이 신뢰받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공생애 이전 유일한 기록이며 첫 공식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육체의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맙시다
스펄전 목사님은 예수님에 관한 것은 어떤 것도 당연하게 추측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했습니다. 교회 간판, 예배 참석, 직분과 봉사, 성대한 예배당과 풍성한 성경 지식이 있다고 임재가 저절로 따르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8장의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약속의 대상은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마음에 우상과 탐심이 가득하고 하나님 나라에 관심 없이 몸만 오가는 이에게 무조건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 적은 없습니다. 진지한 점검과 임재에 대한 사모함,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 순종하는 심령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성전에서 배우시는 참 인간이신 예수님 (46-47절)
사흘 만에 성전에서 찾은 예수님은 선생들 가운데 앉아 듣기도 묻기도 하셨고, 듣는 이들은 그 깨달음과 대답에 감탄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어도 모든 지식을 처음부터 갖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죄만 빼고 걸음마를 배우고 넘어지는 과정을 포함해 인간의 모든 과정을 겪으셨고, 회당에서 배우셨습니다. 죄 없으신 심령과 지성에 성령의 능력이 임했기에 율법학자들이 감탄할 통찰로 가르치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내 틀에 맞추려는 우리의 모습 (48절)
사흘 동안 아이를 찾지 못한 마리아의 외침은 분노와 안도, 눈물이 뒤섞인 것이었습니다. 설교자도 네 살 아들이 교회에서 30분간 사라졌을 때 찾고 나서 화가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12년간 키우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잊어 간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내 삶의 경험에 끼워 맞춥니다. 회의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탐욕으로 서로를 정죄하고, '역사적 예수'라는 이름으로 신비와 기적을 빼는 신학도 같습니다. 자녀도 부모의 틀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며, 설교자 자신도 목회자 부르심을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때 불순종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정이 임재를 가릴 수 있습니다 (49-52절)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라는 말씀은 정 떨어지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과 십자가를 앞두고 부모가 감당할 충격을 생각해 일부러 정을 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나사렛에서 순종하셨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으셨으니 반항이 아니라 의도적인 가르침입니다. 인간적인 정으로만 끈끈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아 임재를 가립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예수님이 보일 만큼만 가까우십시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예수를 찾고 있습니까"라고 도전하십니다.
아버지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원문에 '집'이라는 낱말 없이 '내 아버지의'라는 소유격만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일'로 옮겼는데, 집과 일, 사람 등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담긴 풍성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살에도 아버지의 뜻과 일, 나라 가운데 사셨습니다. 성령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아버지의 집이 되고 성도가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맞추시는 분이 아니므로 우리가 아버지께 맞추어야 합니다. 지상명령, 곧 모든 족속을 제자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아버지의 일 가운데 머물 때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배 참석이나 직분, 봉사만으로 예수님이 당연히 함께하신다고 추측하지 말고 내 마음과 삶을 진지하게 점검합시다.
- 예수님을 내 경험과 기대에 끼워 맞추지 말고, 내가 아버지의 뜻에 맞추며 살아갑시다.
- 인간적인 정과 의리가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도록 예수님이 보일 만큼만 가까운 관계를 맺읍시다.
- 인간관계와 활동, 성취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나라 안에서 예수님을 찾읍시다.
-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일에 머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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