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슥3:1-10)

2012.09.09이재훈스가랴 3:1-10

하나님은 죄와 죄책감에 눌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 새로운 시작을 주신다. 사탄의 고소에 맞서 우리가 설 근거는 십자가뿐이다.

회복의 하나님은 실패한 자에게도 새 시작을 주신다

하나님은 백성이 죄를 범해 심판 가운데 있을 때도 그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구원하고 회복시키신다. 스가랴가 본 회복의 환상은 이러한 약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죄와 과거의 죄책감 때문에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기 어려워한다. 포로 귀환 백성도 바벨론의 쓰라린 기억에 발목이 잡혀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진정한 회복은 물질의 회복이 아니라 거룩한 양심의 회복, 곧 영혼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사탄의 고소는 근거가 있어도 동기는 파괴에 있다 (3절)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를 고소하고 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므로 그의 더러운 옷은 모든 백성의 부정함을 상징한다. 율법에 비추어 보면 사탄의 고소는 근거가 정당하다. 그러나 사탄의 동기는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 회복이 아니라 멸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소의 근거만이 아니라 그 동기를 분별해야 한다. 사탄은 백성이 다시 일어설 수 없고 성전도 재건되어서는 안 된다고 고소한다. 우리는 이 절망의 음성에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탄을 꾸짖고 선택한 백성을 건지신다 (2절)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사탄을 꾸짖으신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은 그들에게 죄와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선택이기에 사탄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 둘째, 여호수아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이다. 불에 타고 있던 나무를 건졌다면 거기에는 목적이 있고, 하나님은 타다 남은 나무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나무이며 그을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다시 사용하신다.

십자가의 위대한 교환으로 더러운 옷이 벗겨진다 (4절)

하나님은 사탄의 고소를 막기만 하지 않고 고소의 근거 자체를 해결하신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고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는 위대한 교환이 일어난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창세기의 장면과 흰옷이 어린 양의 피로 씻긴 요한계시록의 장면도 같은 진리를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사탄이 고소할 때 '나의 죄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대응할 수 있다.

의의 옷을 입은 자는 순종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한다 (7절)

하나님은 의의 옷을 입은 자에게 길을 따르고 명령을 지키라고 명하신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뜻을 돌보며 천사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다음 단계다. 예수님은 '순'이라는 연약하지만 생명이 있는 싹으로, '종'으로, 일곱 눈이 있고 하루 만에 죄를 없애는 '돌'로 오셔서 우리를 의의 옷으로 입히셨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산 돌이 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간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공동체의 삶이 약속된다 (10절)

그날에는 이웃을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물질의 풍요를 넘어 마음의 평화와 기쁨,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을 의미한다. 형편은 달라도 우리 모두는 어린 양의 피로 씻은 같은 옷을 입고 만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십자가이며,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삶에 적용하기

  • 십자가의 위대한 교환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사탄의 고소 앞에서 절망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듭시다.
  •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삶이 열매 맺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 마음의 동기를 살펴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파괴적인 말과 생각을 버립시다.
  • 순 모임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초대하는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함께 누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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