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치명적인 죄[4] - 나태 (마 25:14~30)

2019.07.21이재훈

나태는 게으름뿐 아니라 분주함으로도 나타나며, 그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거부하는 데 있습니다. 은혜로 받은 새 생명과 복음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달란트를 남길 때 나태를 이길 수 있습니다.

나태는 게으름과 분주함으로 나타납니다

나태의 죄는 게으름으로 드러나지만, 쉼과 여가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쉼 속에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나태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나태는 분주함으로도 나타납니다. 유진 피터슨은 "분주함은 헌신이 아닌 배신의 표시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분주함은 자만에서 오기도 하지만, 나태하기 때문에 분주하기도 합니다. 근면과 성실의 뿌리인 라틴어 diligere는 사랑하다라는 뜻이고, 나태의 헬라어 아케디아는 관심과 사랑이 결핍된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육체적으로 바빠도 나태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생산성보다 종말의 준비를 말합니다 (14-30절)

달란트 비유는 흔히 능력을 활용해 많이 남기라는 교훈으로 풀이되지만, 마태복음 25장 전체의 초점은 종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는 화폐 단위로,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어서 노동자가 대략 20년 가까이 일해야 얻을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따라서 달란트는 사람이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종말의 때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도에게 주신 영적 은사와 소명, 그리고 건강과 지식, 재능, 돈, 시간, 생명 등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죄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은혜로 맡겨진 것입니다.

남긴 달란트는 받은 은혜를 그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칭찬받은 이유는 100% 이윤을 남겨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은혜로 맡겨진 일에 믿음으로 참여하여 동일한 은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과 복음, 지식, 물질, 건강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통로가 될 때 동일한 달란트가 남겨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지 않은 것을 남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받은 은혜를 누리기만 하고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태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24-25절)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원금을 잃지는 않았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았습니다. 그가 주인에게 한 말에는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나태함의 책임을 주인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그를 책망한 이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인은 사랑과 신뢰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두려움은 이 오해에서 나왔고, 두려움 때문에 그는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습니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새 생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7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옛사람과 이별하고, 익숙했던 죄의 습관을 떠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은 나태를 낳지만 믿음은 신실함과 충성을 낳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처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릴 때 나태의 죄를 극복하게 되고, 게으름과 분주함도 사라지며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우리 인생의 바탕으로 삼읍시다.
  • 내가 받은 은혜와 복음을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분주함 속에 나태가 숨어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 두려움을 버리고 성령의 능력과 사랑과 절제를 따라 새 생명으로 살아갑시다.
  • 옛사람의 습관을 떠나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사시도록 기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서빙고 1부 예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