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손이 닿는 거리까지 (요일 1:3~7)
하나님은 외로운 우리를 '우리'라는 교회로 부르시고, 예수님이 피값으로 완성하신 사귐을 따라 서로를 위해 값을 치르며 살게 하십니다.
가장 연결된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2023년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외로움과 고립을 유행병으로 규정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외로움이 몸에 주는 해악은 하루 담배 15개비와 비슷하고, 가장 심각한 세대는 스마트폰을 쥐고 자란 10대에서 30대입니다. 제 카톡에도 친구가 3천 명 가까이 있지만 실제로 소통하는 사람은 그중 일부일 뿐입니다. 친구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제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는 2000년 전 똑같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쓰인 편지입니다.
박해보다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으로 숨어 촛불 하나 켜 놓고 숨죽여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박해보다 무서운 것은 압박 속에서 신앙을 버리고 떠나는 동료들이 주는 외로움이었습니다. 터키에서 잡혀 들어갔던 선교사님도 고문보다 동료가 변절하는 소리를 들을 때 더 큰 절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영지주의가 예수에게 몸이 없었다고 속삭였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승리하고서 로뎀나무 아래서 '저만 홀로 남았습니다' 하며 죽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천 명을 남겨 두었다며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처방하셨습니다.
요한이 택한 단어, '우리'
바울은 '나 바울은 너희에게'라고 쓰지만 요한은 다릅니다. 1절과 3절에만 '우리'가 열 번, 1장 전체에 39번, 편지 전체에 150회가량 나옵니다. 사랑의 사도인데도 1장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너희도 우리'라고 초대하려는 것입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비정규직 장그래는 오 부장이 '우리 애'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 밤새 그 단어를 곱씹으며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혼자 두지 않고 '우리', 곧 교회로 부르십니다.
만져 본 예수, 삶이 섞이는 코이노니아
요한은 들었고, 보았고, 만졌다고 말합니다. 소리와 시각은 멀리서도 가능하지만 만지는 것은 거리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 품에 기대었던 제자입니다. 하나님은 닿을 수 없다는 영지주의의 가현설에 맞서, 육신을 입고 오신 참 하나님을 만졌다고 증언합니다. 3절의 '사귐'은 헬라어 코이노니아로, 당시 동업자들이 자본을 함께 대는 경제 용어이기도 했습니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허물어져 손해도 이익도 함께 나누는 관계이며, 불편하면 로그아웃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기억만 남은 니느웨, 삶이 된 사귐
요나의 외침에 니느웨 왕은 보좌에서 내려와 베옷을 입었고, 짐승까지 금식하며 회개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러나 100~150년 뒤 나훔은 같은 도시를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읍'이라 외칩니다. 요나 때는 전염병이 돌았고 주전 763년 일식이 있어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이후 사르곤 2세, 산헤립 등이 니느웨를 확장하고 왕궁 벽에 정복의 부조를 새겼습니다. 은혜의 기억은 있었으나 계속되는 사귐과 순종의 삶은 없었던 것입니다. 한 번의 뜨거운 사건이 아니라 삶의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귐에는 피가 흐릅니다
일본에는 돈을 내고 가족 역할을 빌리는 렌탈 가족 서비스가 있습니다. 이용자는 진짜 가족보다 편하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아프고 손해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없는 사귐은 없고, 7절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그 앞에서 우리의 어둠이 다 드러나지만, 예수님은 가장 처참한 민낯을 보시고도 목숨의 피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사귐에도 피가 흘러야 합니다. 상대의 연약함이 다 보여도 등 돌리지 않고 값을 치르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삶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혼자라고 느껴지는 신앙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우리'라는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 멀리서 바라보는 신앙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오시는 코이노니아의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 한 번의 뜨거운 은혜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삶을 드리는 순종과 예배로 이어갑시다.
- 불편하면 로그아웃하는 편한 관계만 빌리지 말고, 손해와 상처를 감수하며 서로를 위해 값을 치릅시다.
- 상대의 연약함이 드러나도 등 돌리지 않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밉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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