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길이 잠겨도 달리는 사람 (빌 2:12~18)
구원은 처음도 끝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힘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은 불평을 멈추고 예수님처럼 전제로 부어지는 기쁨으로 교회를 하나 되게 합니다.
구원은 수료한 과목이 아닙니다 (12절)
갓생을 살며 몸과 커리어와 통장은 이루려 애쓰면서도, 신앙만은 이미 수료한 과목처럼 슬쩍 흘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 지난주 폭우로 길이 잠긴 중랑천에서도 수많은 러너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루라'는 헬라어 카테르가조마이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현재형으로 멈추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뜻입니다. 길이 잠겨도 구원의 한 걸음을 계속 달려내는 삶이 바울의 명령입니다.
구원의 지분은 우리에게 0%입니다 (13절)
스텔스 차량의 운전자는 주변이 밝아 자기 등이 꺼진 줄 모릅니다. 우리도 삶이 환할 때 내가 잘해서 믿음을 유지한다고 착각하지만, 13절은 결단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보여줍니다. 알리스터 벡 목사가 상상한 십자가 우편 강도 이야기에서, 천국 문지기의 물음에 강도는 '가운데 십자가의 그분이 가라고 하셨습니다'라고만 답합니다. 그는 공로를 쌓을 시간도 몸도 없었으니 지분은 0%였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0.01%조차 우리에게 근거가 없고, 처음도 끝도 그분입니다.
선포된 신분과 내 삶의 간격을 좁히는 길 (12-13절)
강도와 달리 우리는 구원받은 날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서 10년, 2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선포되었어도 지금까지 통일이 완성됐는지 묻는 칼럼이 실리듯, 우리도 갈보리에서 이미 구원이 선포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성질과 습관과 미움은 그대로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구원을 벌어오는 일이 아니라, 선포된 신분과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삶의 간격을 하루씩 좁혀가는 일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명하시는 것을 먼저 주시고 원하시는 것을 명하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13절대로 하나님은 소원을 두시고 행할 힘까지 주십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충분하다던 펠라기우스 같은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지만, 먼저 받으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구원을 이룬 첫 변화는 투덜거림을 멈추는 것 (14절)
1-11절에서 온 우주가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 뒤, 14절은 웅장한 명령 대신 '불평과 분쟁 없이 하라'고 합니다. 불평의 헬라어 공구스모스는 소리에서 나온 말로 웅얼거림이고, 분쟁의 디알로기스모스는 머릿속으로 따져 계산하는 것입니다. 11절에서 모든 혀가 예수를 주로 시인해야 하는데, 같은 혀가 불평으로 웅얼거립니다. 하나님과 동등함을 기득권으로 따지지 않고 비우신 그리스도와 달리, 불평은 내 몫을 움켜쥐는 찬가의 역주행입니다. 시편의 탄식시, 하박국, 욥처럼 불평을 하나님께 쏟으면 기도가 되어 회복으로 이어지지만, 사람에게 흘리면 분열이 됩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하나 됨을 기도하신 것처럼, 불평을 꺼뜨리는 일은 세상이 예수님을 보게 하는 창문을 여는 일입니다.
감옥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이유 (17-18절)
바울은 억울하게 갇혀 쇠사슬에 매여 있었고, 밖에서는 이용당하고 교회 안에서는 사도권을 의심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네 장짜리 빌립보서에 '기쁨'이 16번 나오며,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전제로 부어져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전제는 제사 끝에 제단 위에 포도주를 부어 스며들어 사라지는 일입니다. 행복은 조건이 맞아야 하지만 기쁨은 위에서 내려옵니다. 바울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쓰던 '자족'(아우타르케스)을 가져와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뒤집었고, 그 자족을 예수님께 배웠다고 합니다.
전제처럼 부어진 주님을 따라 삽시다
예수님은 바울보다 더 억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도망쳤고 부인했으며 팔아넘겼고, 세상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의 입에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라는 가장 따뜻한 말이 나왔고, 세상이 낭비라 여긴 그 부어진 피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루어야 할 구원의 여정은 내 몫을 챙기던 웅얼거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기도가 되고, 하나님이 소망과 기쁨을 회복시키시며 흩어진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누군가와 교회를 위해 전제처럼 부어지는 자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힘으로 신앙을 완성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소원과 행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 구원을 이미 수료한 과목으로 여기지 말고 오늘 하루도 구원의 한 걸음을 멈추지 말고 걸어갑시다.
- 내 권리와 몫을 따지며 웅얼거리던 불평은 사람에게 쏟지 말고 하나님 앞에 탄식과 기도로 내려놓읍시다.
- 찬양해야 할 입술로 불평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의 말을 돌아봅시다.
- 교회와 이웃을 위해 전제처럼 부어지는 자리를 피하지 말고, 위에서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 됨을 이룹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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