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큐티에서 설교까지_설교
말씀과 성령, 전도와 치유가 균형을 이루는 목회를 해야 하며, 살아 있는 큐티가 말씀 설교와 교회 부흥의 기초라는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세계를 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목회는 나 개인이나 한국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교회에 공헌하는 데 뜻이 있어야 합니다. 내 교회가 아무리 잘 되어도 한국 교회의 밑거름이 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셨습니다. 이 세 사역은 삼위일체처럼 하나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이 깨지고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치유 사역과 말씀 사역, 끊임없는 전도 사역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역의 은사보다 목양의 은사를 알아야 합니다
설교자는 처음에 말씀 사역을 중심으로 목회했고, 이후 성령 사역에 힘을 쏟았습니다. 성령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고서야 성도들이 성령을 사모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이는 법입니다. 그는 목회 과정에서 자신에게 사역의 은사보다 목양의 은사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교회가 떠나지 않고 지켜지며 목양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목회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역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의 은사를 빨리 분별하여 그 사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고백 위에 서고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세워집니다. 그 고백이 없으면 교회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인 공동체이므로 우리는 청지기로서 섬기는 자입니다. 신앙에도 균형이 있어야 오래가고 안정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뜨거운 성령 체험도 필요하지만, 냉철함과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 속으로 들어가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말씀, 성령, 사회 참여, 선교로 축을 옮기며 회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에 빠지는 돌처럼 주저앉게 됩니다.
살아 있는 큐티가 삶과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큐티는 나무처럼 죽은 큐티와 살아 있는 큐티로 나뉩니다. 큐티를 계속해도 삶이 변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입니다. 큐티는 말씀 앞에서 나를 거울처럼 비추어 보는 것이며, 남의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큐티는 날마다 해야 하고 하루아침에 깊어지지 않습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 성도들이 같은 날 같은 본문으로 큐티하는 모습은 큰 힘이 됩니다. 교회의 기초는 말씀이며, 말씀이 살아 있을 때 사람과 교회가 변하고 자라납니다. 프로그램이나 인위적인 사역만으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큐티가 말씀 설교와 평신도 사역으로 이어집니다
큐티 훈련이 된 교인에게는 제목 설교나 예화 설교보다 말씀 설교가 깊이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강해 설교를 하려면 교인을 먼저 큐티하는 교인으로 세워야 합니다. 설교는 본문을 분석해 뼈대를 세우고, 묵상된 메시지라는 살을 입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가르침, 선포, 치유였듯이 평신도도 설교하고 축복하고 복음을 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목사만이 누릴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교단의 법이 만든 것입니다. 큐티를 제대로 배우면 평신도도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살아 있는 큐티로 돌아가 내 삶이 말씀으로 변하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 내게 주신 은사가 사역인지 목양인지 분별하고 그 자리에 충실합시다.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말씀과 성령, 전도와 섬김의 균형을 붙듭시다.
- 세계를 품는 시각으로 선교와 이웃을 위한 헌신에 마음을 엽시다.
- 말씀 앞에 무릎 꿇고 깨끗한 양심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날마다 가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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