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눅 3:1~14)
하나님의 말씀은 화려한 권력이 아니라 광야의 빈들에 있던 세례 요한에게 임했고, 그 말씀의 비전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빈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와 그 열매로 이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만물을 포함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시다 (4-6절)
누가복음 3장 4-6절은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변화를 말씀합니다. 이는 교만한 영혼이 꺾이고 겸손한 영혼이 높임 받는 영적 변화이면서, 물리적으로도 만물이 회복되는 전 우주적 구원을 가리킵니다. 지금의 산과 골짜기는 타락과 노아 홍수 때의 대격변이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혼만이 아니라 영과 육, 그리고 망가진 만물의 질서를 회복하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받은 십자가의 은총도 나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악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1-2절)
1-2절은 디베리오 황제, 본디오 빌라도, 헤롯 등 당시 통치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말씀이 임한 때를 설명합니다. 이들 가운데 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특히 디베리오 황제는 포악하고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잃고 주권과 자유가 짓밟힌 유대 사회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이 두 명이었던 것은 로마가 종교 지도자를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 이용했음을 보여주며, 종교 지도자가 정치 권력의 도구가 되었을 때 영적 어둠이 그 땅에 임했습니다.
말씀은 빈들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 행사가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이나 정치 권력이 가득한 헤롯 왕궁이 아니라 광야의 빈들에 있던 세례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세상은 정치 권력자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빈들에서 조용히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빈들로 나아가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영적 체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그 말씀이 온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소명은 죄 용서를 받게 하는 회개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 앞에는 인간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기다린다는 나쁜 소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용서는 돌아온 아들을 보고 베푼 것이 아니라 먼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회개는 우리 힘으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행이나 자기 학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는 나눔, 정직, 정의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7-14절)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혈통이나 종교 의식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열매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 열매는 세 가지로 주어졌습니다. 옷과 음식을 가진 자가 나누는 나눔, 세리에게 주신 정직, 군인에게 주신 강제로 돈을 뜯어내지 않는 정의입니다. 나눔, 정직, 정의는 진리의 영역이며, 은혜와 진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본질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진리를 행하는 삶이 따라와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빈들로 나아가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집시다.
- 회개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기억하고 돌이킴을 결단합시다.
- 죄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갑시다.
- 정해진 것 이상을 취하지 않는 정직한 삶을 돌아봅시다.
- 불의한 구조 속에서 정의를 이루는 일에 함께 참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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