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이만큼 했는데도 부족합니다 (전 2:4~11)
수고의 열매는 분명 기쁨이지만 해 아래에서는 한계가 있어 늘 부족합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립시다.
수고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4-10절)
전도자는 집과 포도원, 정원과 과수원, 연못을 만들고 재산과 종과 보물을 모았습니다. 눈이 원하는 것을 멀리하지 않았고 지혜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모든 수고를 기뻐했고 그것이 수고의 보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수고로 얻은 기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을 지키고 일구게 하셨으니, 일은 벌이 아닌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죄와 저주로 일이 고통이 되었어도 그 본래의 목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 아래의 수고는 입김처럼 사라집니다 (11절)
전도자는 곧바로 모든 것이 허무하고 유익한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허무'는 본래 입김이나 수증기를 뜻해, 존재하지만 만지려 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유익'은 장사를 마치고 이익을 계산할 때 쓰는 말로, 장부를 정리하니 남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해 아래'는 하나님을 빼고 바라본 세상의 삶입니다. 취직만 하면 좋겠다던 사람도 곧 자리 잡기, 인정받기, 승진을 바라며 허들을 넘듯 살아갑니다. 이것만 이루면 소원이 없겠다는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땅을 얻고도 쓰러진 파홈의 이야기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농부 파홈은 해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걸어서 둘러본 땅을 모두 얻게 됩니다. 그는 '저기까지만' 하며 멀리 가다가 외투와 신발마저 벗어던지고 달려 해 질 무렵 간신히 돌아오지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몸이 묻힐 만큼이었습니다. 수고로 얻은 것은 소중하지만 생명과 존재의 가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돈을 얻으면 잃을까, 자리가 오르면 밀려날까 두려워하며 인생을 걸면 얻은 것도 누리지 못한 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24절)
전도자는 먹고 마시며 일하는 기쁨조차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땅의 수고로 얻은 기쁨은 조건이 달라지면 희미해지지만, 기쁨의 근원을 알면 마르지 않는 샘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매일 하나님이 내려 주신 만나를 거두어 먹었습니다. 수고는 해야 하지만 만나는 계속 내리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그 기쁨을 맛보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빵이어서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톨킨의 「니글의 이파리」에서 화가 니글은 평생 큰 나무 한 그루를 그리려 했지만 이웃 페리 씨를 도우며 그림을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긴 여정 끝에 그는 살아 있는 완성된 나무를 마주하고, 가장 아름다운 이파리 몇 장이 페리 씨를 도왔던 순간들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다 끝내지 못한 수고를 남기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한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품었던 일을 완성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쫓기듯 살지 않아도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수고의 열매와 기쁨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감사하며 누립시다.
- 이것만 이루면 만족하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열매에 인생 전부를 맡기지 맙시다.
- 이만큼 했는데도 부족하다는 고백이 들 때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시다.
-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주시는 은혜를 누립시다.
- 하나님 안에서 한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고 조급함 없이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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