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눅 13:10~17)

2014.06.22이재훈누가복음 13:10~17

예수님은 사탄에게 18년간 매여 있던 여인을 안식일에 고쳐 주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매임뿐 아니라 세계관과 잘못된 제도 같은 보이지 않는 매임에서도 풀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므로, 우리도 율법의 목적인 사랑을 놓치지 않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매임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운전할 때 엔진 브레이크가 풀리지 않은 채 달리는 것처럼, 우리 영적인 삶도 겉으로 풀 수 있는 것은 풀었지만 더 근본적인 매임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막혀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 실패로 인한 절망, 죄악의 습관이 그러한 매임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매임은 사탄의 매임입니다. 성경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착취, 억압, 질병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사고방식, 세계관, 가치관이 보이지 않게 우리를 묶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세계관은 처음에는 나와 다른 안경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렌즈로 보는 것이 곧 나의 시력이 되어 무서운 매임이 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 주러 오셨습니다

사탄은 죽음으로 인간을 묶는 것을 최대의 무기로 삼았고,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예수님은 죽음의 매임에서 풀어지셨고, 무덤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죽음에서 풀려나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죽음의 매임에서 풀려나는 길이 허락되었다면, 예수님은 그 어떤 매임에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실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가운데 안식일에 18년 동안 병에 매여 있던 여인을 고치신 사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병 고침으로 잘못된 제도에 도전하셨습니다 (16-17절)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일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고, 그로 인해 예수님은 고난을 겪고 죽음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먼저 다가가셨고, 그 사람은 낫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고침을 받은 그에게 예수님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고, 유대인들은 놀라워하기보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마땅하냐며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일으킨 분이 누구인지 묻지 않고 율법의 해석과 제도를 지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잘못된 해석과 세계관, 거짓된 제도의 매임을 풀고자 도전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제도는 무너져야 합니다 (14절)

회당장은 일할 날이 엿새나 있으니 안식일이 아닌 날에 병을 고치라고 분노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면 먼저 놀라움과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났어야 했지만,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제도가 깨진 것에 분노했습니다. 왜곡된 종교적 감정은 이처럼 옳다고 믿는 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분노로 드러납니다. 역사 속 17세기 스코틀랜드와 청교도 시대의 엄격한 안식일 규정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제도가 잘못된 해석과 종교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적을 잃은 형식은 집단적 위선이 됩니다 (15-16절)

예수님은 회당장과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윤리적 위선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옳다고 믿음으로 생기는 집단 문화적 위선입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왜 안식일을 주셨는지 목적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지킬지만 연구하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항상 왜라는 질문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이유를 모른 채 남들이 하니까 하는 관습이 많다면 우리는 집단적 위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여인이 사탄에게 매여 있는 것에 분노하셨고, 율법의 목적인 사랑을 막는 제도라면 무너져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안식을 회복시키십니다

회당장은 예수님께 안식일 파괴자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예수님은 진정한 안식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셨습니다. 죄에서 자유케 되는 안식, 병에서 놓이는 안식, 과거의 상처와 절망에서 일어나는 안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참된 생명의 길은 매이는 것이 아니라 매임에서 푸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인 것을 푸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며 참된 안식이 우리 삶과 이 사회에 임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삶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근본적인 매임, 곧 상처, 절망, 죄악의 습관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제도와 관습이 왜 필요한지 목적을 되물으며, 사랑을 막는 것이 있지 않은지 점검합시다.
  • 우리 안에 기적과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놀라움과 경외보다 자기 기준이 깨진 것에 먼저 분노하는 왜곡된 모습이 없는지 살핍시다.
  • 사랑에서 비롯된 의로운 분노로, 매여 있는 영혼들을 위해 안타까워하고 기도합시다.
  • 참된 안식을 날마다 주님 앞에서 누리며, 매인 것을 푸는 삶으로 세상 가운데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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