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도피성 (신 19:8~10)
하나님의 정의는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을 살피고 자비와 대속으로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도피성이 되셔서 누구든 그분께 피하면 보호받고 회복된다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의무와 헌신까지 고려하는 정의입니다
어느 사회가 정의로운지는 소득과 부의 분배만이 아니라 의무의 분배가 올바른지를 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나눌 때 하나님은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분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본 원칙은 제비뽑기였지만, 자발적인 의사와 헌신에 따라 땅이 다르게 주어졌습니다. 반면 자신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더 쉬운 땅만 얻으려 한 요셉 지파에게는 어려운 지역이라도 변경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정의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참여와 헌신, 의무까지 고려한 정의입니다.
도피성은 실수에 대한 자비를 보여줍니다 (1-4절)
하나님은 우연히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피할 수 있도록 도피성 제도를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제도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도 반복해서 등장할 만큼 하나님께서 중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땅 분배를 마친 뒤 도피성을 세웠고, 도로를 넓게 닦고 곳곳에 안내판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당시는 폭력과 복수가 난무하던 후기 청동기 시대였기에, 이 제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을 더 소중하게 보시는 자비로운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지나친 복수심을 억제하십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씀은 복수를 장려하는 말이 아니라 복수를 억제하는 말씀입니다. 개인이 복수하도록 허용하면 복수는 점점 더 가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공적인 재판을 통해 손해만큼만 배상하게 하는 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성급한 분노가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나오는 절제된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피할 길과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시는 자비의 정의입니다.
도피성은 대가를 치르는 정의를 보여줍니다
도피성에 들어간 사람도 고의가 드러나면 쫓겨났고, 실수라도 도피성에 머문 동안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그들이 죗값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속죄 사역을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누군가 값을 치르는 대속적인 정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도피성이 되십니다 (17-18절)
히브리서 6장 17절과 18절은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도피성의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누구에게나 열려 계십니다. 도피성 안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었듯이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피해야만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죽인 자만 받아들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기에 고의로 죄를 지은 자도 받아주십니다. 그분 안에서 죄인은 회복과 새로운 기회를 얻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도피성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이 시대의 도피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죄 가운데 방황하는 자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시련과 고난 속에 있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공급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십자가 안에서 아름답게 만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정죄하기보다 동기와 과정을 살피는 자비로운 시선을 가집시다.
- 분노가 일어날 때 복수심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읍시다.
-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이 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상처받고 힘겨운 이웃이 교회에서 회복의 자리를 찾도록 함께 섬깁시다.
- 교회가 이 시대의 도피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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