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19~25)

2026.08.23이재훈야고보서 1:19~25

말씀은 우리를 낳고 마음에 심겨 구원하며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듣고 감동하는 데 그치지 말고, 순종의 걸음 안에서 이미 복을 누립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간격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생각과 행하심이 분리되지 않지만, 죄로 파괴된 인간에게는 이 분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17절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숨은 죄가 그만큼 많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 간격이 줄어들고 없어지는 여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분리가 특히 말씀 앞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거울, 듣고 잊으면 자신을 속입니다 (22-24절)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을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사람에 견줍니다. 당시 청동거울은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봐야 모습이 보였는데, 그렇게 보고도 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마음속의 탐욕과 교만과 염려가 드러납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을 펴지 않는 것도 내면이 드러날까, 무엇을 행해야 할지 말씀하실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깨닫고 감동받는 것, 목회자가 설교를 잘 전하는 것도 순종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안 듣겠다는 것이 답은 아니며, 본문은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우리를 낳고 마음에 심긴 진리의 말씀 (18-21절)

첫째, 이 말씀은 우리를 낳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만든 것과 낳은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홀로 낳으신 분은 독생자(모노게네스) 예수 그리스도뿐이었고, 우리는 지음받은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타락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장난감 병정이 군대가 되는 변화로 이를 비유했습니다. 둘째, 이 말씀은 마음에 심긴 말씀입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대로, 돌판의 율법은 사람의 악함 때문에 지킬 수 없었기에 성령께서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셨습니다.

구원하고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 (25절)

셋째, 이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합니다. 우리를 낳은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넷째,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마틴 루터는 초기에 야고보서를 로마서와 대치된다고 보아 지푸라기 서신이라 평했지만, 후기에는 이 말씀이 상반되지 않고 보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이던 백성을 자유케 하신 뒤 그 자유를 누리도록 율법을 주셨고,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백성의 죄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율법을 온전히 이루셔서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릴 길이 열렸으니, 이는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악보가 몸에 밸 때까지 연습하는 실천

율법 안에 거한다는 것은 연주자가 악보가 마음과 몸에 내장될 때까지 연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연주자는 자유롭게 연주하는데, 악보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치면 자유가 아니라 소음입니다. 처음에는 안 되던 연주가 어느 순간 구현되듯 말씀을 실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며, 너무 멀다고 포기하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이미 마음에 심어 주신 것을 요구하십니다. 에스겔 33장 31-32절의 백성은 선지자의 말을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처럼 즐겨 들으면서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행함 안에서 이미 누리는 복

저는 신학교 채플에서 맨 뒤에 앉아 설교를 평가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맨 앞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동기 목사님을 보고, 그분은 어떻게 실천할지에 초점을 두었는데 저는 평가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와 노하기는 천천히 하라는 19절처럼,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말씀의 주권 앞에 서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분노가 많던 모세도 말씀의 주권을 인정했기에 온유했습니다. 25절의 '행하는 일에'는 '행함 안에서'라는 뜻이어서, 복은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 순종의 과정 자체입니다. 용서하려는 마음의 움직임부터, 나누고 섬기는 과정 안에서 복이 임합니다. 이 간격은 우리 힘으로는 없앨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으로 이어졌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말씀을 듣고 감동받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으로 이어지도록 돌아봅시다.
  • 내면이 드러날까 말씀을 피하지 말고, 영혼의 거울인 말씀 앞에 날마다 섭시다.
  •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와 노하기는 천천히 하며,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읍시다.
  • 실천이 멀게 느껴져도 포기하지 말고, 성령께 도움을 구하며 악보를 익히듯 순종을 연습합시다.
  • 용서하려는 마음과 나누고 섬기는 걸음 안에서 이미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누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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