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부활과 생명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이라 부르시며 자신이 부활이고 생명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희망과 이성적 이해를 넘어, 말씀을 의지로 믿고 고백하는 결단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부활로 바뀌는 잠입니다
나사로는 실제로 죽어 무덤에 3일 동안 갇혔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나사로가 죽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축복과 기적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 부르셨고, 그의 죽음을 죽음이라 하지 않고 잠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죽음은 저주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로 바뀌어 깨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고난과 죽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과 지식에 기댄 믿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일찍 오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터뜨렸습니다. 그 원망 속에는 예수님께 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실 능력이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막연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이성과 합리성, 지식과 정보에 기초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출발은 좋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날의 부활로 물러섰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고 자기 식으로 슬쩍 바꾸어 재해석하면, 믿음의 수준을 넘어서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약속에 근거하고 의지로 결단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내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약속에 기초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주는 분이라는 뜻을 넘어,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시고 생명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안다는 것은 이성의 문제이지만 믿는다는 것은 결단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이 물음 앞에서 마르다는 녹아지기 시작했고, 자기의 인간적이고 제한적인 믿음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믿음을 넘어 고백하고 결단하는 믿음으로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의 내용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주여 그러하외다라는 말은 아멘과 같은 뜻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응답입니다. 믿음은 말이 바뀌는 것이고, 지금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성령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봉사하고 전도했더라도, 아는 신앙에 머물면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단이 있어야 기적이 시작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바꾸지 말고 그대로 순종합시다.
- 예수님이 부활이시고 생명이심을 고백하며 아멘으로 응답합시다.
- 알고만 있던 습관과 죄에서 돌이키기로 결단하고, 담배나 술처럼 끊어야 할 것을 오늘 끊어 봅시다.
- 아는 신앙에 머물지 않고 의지로 결단하는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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