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그네를 사랑하라 (신 10:17~22)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우리도 한때 나그네였던 자로서 이 시대의 나그네를 품는 것이 시대적 소명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기억하며 나그네를 사랑합시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17-18절)
하나님은 신의 신이시요 주의 주이시며, 위대하고 강력하며 두려운 분이십니다. 신의 신, 주의 주는 히브리어로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가장 크신 하나님께서 가장 깊이 관심을 두시는 것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 사람들인 나그네입니다. 사람은 힘이 생기면 그 힘을 자기를 위해 쓰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영혼들을 사랑하십니다. 시편 146편 9절도 여호와께서 나그네를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우리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소명입니다.
우리도 한때 나그네였음을 기억합시다 (19절)
신명기 10장 19절은 이방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그 이유로 너희도 이집트에서 이방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도 동일한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가인은 땅을 떠난 뒤 성을 쌓았고, 노아의 후손들은 바벨에서 성을 쌓았습니다.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거절하고 안착하려 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 것이었습니다. 야곱도 바로 앞에서 자신의 나그네 길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본질이 나그네임을 깨닫게 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나그네로 부르셨습니다.
고향을 빼앗기고 떠난 나그네를 품어야 합니다
첫째 나그네는 고향을 빼앗겨 살아남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입니다. 매일 3만 4천 명, 1분당 24명의 난민이 생겨나고 있고, 그중 18세 이하 어린아이의 비율이 51%에 이릅니다. 전 세계 GDP의 1.9%에 불과한 저소득 국가들이 전체 난민의 절반 이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가장 부유한 6개국은 6% 이하만 수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나그네는 더 잘 살기 위해 스스로 고향을 떠난 이주민입니다. 전 세계 이주민은 2000년 1억 7300만 명에서 2015년 2억 440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흐름을 통해 일하고 계시므로, 교회는 이를 배타적으로 밀어내지 않고 선교적 기회로 맞아야 합니다.
고향을 잊은 나그네로 안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나그네는 잘 살기 때문에 나그네 됨을 잊고 이 세상에 안주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고향을 잊으면 낯익은 거리도 이국보다 차갑게 느껴지고, 인생은 정처 없이 흔들리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나그네된 거류민이라 부릅니다. 법률상 머물 수 있지만 시민권은 없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가진 국적과 거주 권한은 나그네로서 잠시 가진 것일 뿐이며, 빌립보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느냐고 물으시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심판의 기준이 바로 이 나그네를 대한 자세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과 12절은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성도들에게 선한 행실로 살라고 권합니다. 온누리교회도 이주민을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온누리 성도로 맞이해야 하며, 그 이름에 주신 하나님의 시대적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고향을 빼앗기고 떠나온 난민과 이주민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읍시다.
-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기억하며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갑시다.
- 이주민을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온누리 성도로 맞이합시다.
- 지극히 작은 나그네에게 베푼 것이 주님께 한 것임을 기억하며 사랑을 실천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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