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하나님과 가이사 (눅 20:19~26)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정치화된 종교와 종교화된 정치 앞에서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별하시고, 양쪽의 미움을 감수하며 참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정치화된 종교와 종교화된 정치가 예수님을 거부하다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결합은 역사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정치화된 종교는 절대적 진리를 버리고 특정한 정치적 입장만을 내세우며, 종교화된 정치는 상대적인 이념을 절대화하고 신격화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정치화된 종교세력이었고, 로마 제국은 시저를 신격화하며 정치를 종교화했습니다. 이 두 세력의 사악한 연합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그들이 긴장하고 두려워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위선과 거짓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모인 연합 세력 (20-22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트집을 잡아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계략을 꾸몄습니다. 평소 어울리지 않던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한 팀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반로마주의자였고 헤롯당원은 친로마주의자였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선한 일에 하나 되기는 어려워도 악한 일에 한마음이 되는 것은 무섭도록 쉽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말씀이 옳다고 칭찬했지만, 마음으로는 존경도 순종도 없었습니다. 시편 55편의 말씀처럼 그들의 말은 버터보다 부드러웠지만 마음에는 전쟁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이 드러낸 질문 (24-25절)
그들의 질문은 세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신성시되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에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토지세, 소득세, 인두세를 거두었고, 인두세로 바치는 데나리온 동전에는 시저의 얼굴과 신적인 아들, 대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데나리온을 보이라고 하시자 그들의 주머니에서 동전이 나왔고, 그들 스스로 로마의 협력자임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답하셨습니다. 여기서 바치라는 말은 섬기고 예배하라는 뜻이 아니라 빚을 갚으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누는 목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가이사는 세금을 거둘 수 있어도 사람의 영혼까지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가이사에게 무엇을 드릴지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나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자꾸 나누려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분별력이 주어집니다.
양쪽의 미움을 감수하고 진리를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비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금을 내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샀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은 로마의 미움을 샀습니다. 예수님은 눈치를 보며 올무를 피하려 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과감하게 양쪽 모두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참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옳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담대한 용기와 지혜입니다. 모두에게 칭찬받으려다 올무에 빠지는 삶이 아니라, 배척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담대히 선택하는 삶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칭찬 앞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분별력을 잃지 맙시다.
- 악한 일에 한마음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진리 위에 굳게 섭시다.
- 가이사를 핑계 삼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립시다.
- 눈치 보며 올무에 빠지지 않고 옳은 것을 담대하게 선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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