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11)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빌 2:12~18)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은 선물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그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불평 없는 입술에서 시작해 기쁨의 헌신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
주후 405년경 로마의 한 모임에서 감독이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었습니다. 그 기도문은 '당신이 명하신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행할 은혜와 능력도 주시기를 구하고, 무엇이든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브리튼 출신의 엄격한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이미 능력이 있다며 분노했습니다.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그의 사상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면죄부처럼 중세와 오늘까지 비슷한 생각이 이어져 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의 뜻 (12절)
12절의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받는 선물이라는 에베소서 2장 8절과 부딪치는 듯해 어떤 이는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이 구절을 피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랑하는 자, 이미 순종해 온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어졌고, 빌립보서 1장 6절대로 그들 안에는 구원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의 work out your salvation은 구원을 얻으려고 일하라는 work for가 아니라, 구원받은 상태에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앞 구절 11절까지는 낮아지고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높이는 찬가이고,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 길을 따를 차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우리가 이룹니다 (13절)
13절은 우리 안에서 뜻을 품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12절과 '왜냐하면(for)'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니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우리가 애쓰면 도우신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이룰 수 있고 이루어야 합니다. 12절만 잡으면 인간의 노력을 내세우게 되고 13절만 잡으면 노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 둘을 떼면 복음이 무너집니다. 아버지가 준 용돈으로 산 생일 선물을 아들이 가져와도 아버지가 기뻐하듯, 하나님은 은혜로 이룬 우리의 순종을 기뻐하며 격려하십니다.
의롭다 하심과 영화 사이, 그림을 복원하는 일
구원은 과거·현재·미래로 나뉩니다. 과거의 구원은 믿는 순간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으로, 100% 완전하며 뒤집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죄의 존재에서 벗어나는 영화(글로리피케이션)가 있고, 그 사이에 우리가 이루어 가는 현재의 구원이 있습니다. 1512년 완성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촛불과 먼지로 어두워졌다가 복원되자 밝은 색이 드러났습니다. 복원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림답게 되돌렸을 뿐이며, 구원을 이루는 일도 옛사람과 세상의 먼지로 덮인 구원의 그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알렉 모티어의 말대로 두렵고 떨림은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하는 자녀의 두려움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누구보다 수고했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불평과 분쟁 없이 별처럼 빛나는 삶 (14-15절)
14절은 무슨 일이든 불평과 분쟁 없이 하라고 합니다. 이는 성격이 아니라 신앙과 구원의 문제입니다. 불평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심을 부정하는 불신앙이며, 출애굽 세대는 칼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 때문에 광야에서 실패했습니다. 분쟁은 은혜를 잊은 것이어서, 빌립보 교회도 4장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중심으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5절의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는 모세가 신명기에서 쓴 표현입니다.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삶이며, 어둠을 이기는 길은 어둠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부어도 기뻐하는 삶 (17-18절)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것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피가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 위에 전제로 부어질지라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전제는 제물을 드린 뒤 마지막에 포도주를 붓는 순서로, 바울은 자신을 메인이 아니라 엑스트라로 말합니다. 다툼은 누가 주인공인지 가리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바울은 엑스트라로 부어져도 기뻐했습니다. 이는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은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에서 나온 헌신입니다. 구원은 벽장 속에 가둬 둘 선물이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값진 선물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구원이 내가 이룬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받은 선물임을 날마다 고백합시다.
- 내 안에서 뜻을 주시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의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어 갑시다.
- 구원이 취소될까 떠는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아버지를 아프게 할까 조심하는 자녀의 두려움으로 살아갑시다.
- 입술의 원망과 불평, 관계 속의 시비와 분쟁을 끊고 어두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납시다.
- 내가 엑스트라로 부어지더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추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