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영상] 우상의 도시에 복음을 심다 (행 17:16~34)

2024.08.11이재훈사도행전 17:16~34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아테네에서 접촉점을 찾아 창조주이시며 은혜로 주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회개와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도 우상의 도시에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된 그리스도인

사도행전의 복음 전파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건에 사람들이 의문을 던지면 사도들이 그 질문에 답하는 형식입니다. 2장의 베드로, 7장의 스테반, 8장의 빌립, 10장의 베드로, 13장 비시디아 안디옥의 바울이 모두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전도와 선교의 기회를 여실 때 사람들이 구원과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을 묻습니다. 그때 담대하게 복음을 설명할 수 있도록 우리는 준비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7장의 바울도 같은 패턴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상이 가득한 도시에서 바울이 격분하다 (16-21절)

홀로 아테네에 들어간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도시를 보고 격분했습니다. 아테네는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중심이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이었지만, 바울에게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대로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미신은 통하는 데가 있어서, 지성이 많을수록 우상을 더 유식하게 포장할 뿐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아름답다고 찬양해서는 안 되고, 당시 공공신상이 2만 5천에서 3만 개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회당뿐 아니라 시장인 아고라에서 철학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말쟁이라고 폄하한 이들도 있었지만 새 소식을 듣고 싶어 한 이들이 아레오바고로 초청했습니다. 바울은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초청을 받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수의 열매도 복음을 심는 일입니다 (34절)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등 소수가 믿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실패한 사역이라 폄하하지만, 전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말입니다. 복음은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고 한 영혼이 결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선교지에서 수십 년간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하는 선교사도 있지만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거두므로 결신자 수로 사역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경제 논리라면 조선 땅에 선교사가 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슬람권에서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이라크 IS 본부 근처의 한 교회도 그렇습니다.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교차문화적 복음 제시의 모델이어서 『맞춤전도』를 쓸 때도 가장 중요한 모델로 삼았습니다.

접촉점으로 마음과 귀를 열다 (22-23절)

바울의 탁월함은 청중과의 접촉점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며 시작하셨고, 이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첫 접촉점은 인사였습니다. 속으로는 분노했지만 심판받는다고 말하는 대신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존중하는 말로 마음을 열었습니다. 맞춤전도에서도 방황하는 탕자들이여 돌아오라고 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당신들에게 하나님이 비상구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접촉점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입니다. 모르는 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세운 제단을 보고,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신을 알려 주겠다고 하자 귀가 열렸습니다.

창조주, 주시는 분, 함께하시는 하나님 (24-28절)

바울이 알려 준 신은 첫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신전에 살지 않으신다는 선언은 용기 있는 것이었고, 유물론인 에피쿠로스 철학과 범신론인 스토아 철학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진화론도 근본은 유물론이며 진리는 창조에서 시작합니다. 둘째, 인간에게 받는 신이 아니라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종교는 신을 받는 자로 여기지만, 우리가 아무리 헌신해도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며, 드림은 오히려 복의 통로입니다. 셋째, 찾으면 만날 수 있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구약 대신 그리스 시인들의 구절을 인용했고, 요한이 로고스를 하나님으로 소개한 것도 같은 변증입니다.

회개를 통한 구원, 그리고 우상의 도시 (30-34절)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되,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입은 존중이었지만 결론은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거나, 더 알고 싶어 하거나, 믿었는데 오늘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우상의 도시입니다. 돈, 술과 마약, 정욕과 부도덕, 정치권력, 힘과 건강의 우상이 마음속 신전에 가득합니다. 바울이 가진 거룩한 분노가 우리에게 있는지 돌아보고, 그 분노를 지혜로운 결론으로 바꾸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에 담대히 답할 수 있도록 준비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상대를 존중하는 말로 접촉점을 찾아 마음과 귀를 여는 전도를 합시다.
  • 결신자 수로 사역을 평가하지 말고 끈기 있게 복음을 심읍시다.
  • 하나님을 도와드린다는 착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소유로 살아갑시다.
  • 내 마음속의 돈, 정욕, 권력 같은 우상을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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