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2) 단물의 축복
광야에서 만난 쓴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단물로 바뀌었듯이, 광야의 고난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입니다. 원망 대신 기도로 나아가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는 사람이 그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광야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며, 기적 뒤에도 고난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는 목표가 아니라 잠시 거쳐야 할 과정이며, 우리는 그 길을 성실하게 통과해야 합니다. 사흘을 걸었으나 마실 물이 없었고, 겨우 찾은 샘물은 쓴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적 뒤에 또 기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광야에서는 잠깐의 고난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고난이라는 두 면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시며, 축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원망 대신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참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고난 앞에서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을 먼저 쏟아냅니다. 백성은 모세를 향해 원망했지만, 그 원망은 사실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비판과 원망을 맞닥뜨렸을 때 사람에게 대꾸하지 않고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혈기로 일을 그르쳐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지만, 그 세월 동안 하나님께 겸손을 배우고 훈련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혈기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나무를 던질 때 쓴물이 단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보이시며 그것을 물에 던지라고 명하셨습니다.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방법이지만, 모세가 순종하자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세상의 이성과 경험으로 따져 보면 잘될 것 같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를 때 광야는 축복의 자리가 됩니다. 노아가 산 위에서 배를 지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섭니다. 이 나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분을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쓴물을 떠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님을 마십시오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 바꾸고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른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외로움과 허물을 보시고,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단물은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그분의 살과 피, 곧 보혈입니다. 또한 그 생수는 성령을 가리키기도 하여,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생명나무를 먹고 살 때 신앙이 변하고 치유의 약속이 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쓴물을 지나 엘림에 이르렀고, 그곳에는 샘물 열두 개와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거처를 정하고 쉬었습니다. 쓴물과 같은 선악과를 먹는 사람은 옳고 그름만 따지다 망하게 되지만, 생명나무를 먹는 사람은 은혜와 용서와 축복을 나누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고 오랜 세월을 통해 성품이 변하며, 혈기의 모세가 기도의 사람으로 변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변하게 됩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은 순종하는 백성에게 애굽의 병이 하나도 임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원망과 불평 대신 고난 가운데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시다.
- 기적 뒤에 찾아오는 고난도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통과합시다.
-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걸음을 내디딥시다.
-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혼을 날마다 채웁시다.
- 신앙이 자라도록 삶의 자리를 교회 가까이에 두고 생명나무를 먹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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