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사랑과 순종 (엡 5:22-33)
결혼은 인간의 행복을 넘어, 영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이 땅에서 미리 보여주는 하나님의 제도입니다. 성령 충만은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으로 증명됩니다.
결혼은 영원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천지창조의 절정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었고,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모습으로 그리며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만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의 영원한 결혼을 이 땅에 미리 보여주시려고 결혼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62장 3-5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버림받고 가정이 상처받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남편 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결혼이 남아 있습니다.
아내의 순종은 사랑받은 자의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22-24절)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은 순종입니다. 이 순종은 남편이 무엇을 원하든 다 따르거나 죄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된 남편을 향한 기쁘고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존 스토트는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이 괴물 같은 존재에게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오래 받은 아내는 부드럽고 순종적이 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는 불평이 쌓이고 거칠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종은 사랑을 받은 결과로 맺히는 열매입니다.
남편의 머리됨은 지배가 아니라 희생과 헌신의 사랑입니다 (25-30절)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내에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길고 엄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머리됨에는 리더십과 사랑의 근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진정한 머리됨은 군림과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희생, 헌신, 겸손입니다. 남편은 또한 아내를 말씀과 물로 씻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세워 가는 영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는 부부 사이에 권력다툼을 가져왔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서 여인은 남편을 지배하려 하고 남편은 여인을 다스리게 된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지배하려는 다툼과 갈등이 일어났고, 모든 종류의 부부싸움의 근원은 한마디로 권력다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뒤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부르시며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가정의 머리인 남편의 책임이 더 무겁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때에만 죄로 깨어진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남편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자기 몸을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면 됩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이는 내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고백한 것처럼, 화가 날 때도 아내를 이 여자 저 여자라고 부르지 말고 내 살 중의 살, 내 뼈 중의 뼈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아내를 비난하는 것은 곧 나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수록 남편은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고, 아내는 더 기쁘게 순종하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가정에서부터 살아갑시다.
- 아내는 남편을 사랑의 근원으로 존중하며 기쁨으로 순종합시다.
- 남편은 지배하지 않고 희생과 헌신으로 아내를 섬기는 머리가 됩시다.
- 화가 날 때에도 아내를 내 살 중의 살, 내 뼈 중의 뼈로 존중하며 불러 봅시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부부 관계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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