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시는 예수님

2010.09.17하용조요한복음 11:28-37

마르다의 인간적인 믿음이 부활의 믿음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을 함께 짊어지시는 분임을 전합니다.

마르다의 믿음이 부활의 믿음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마르다는 머릿속 지식과 이성에 기초한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그 믿음을 고쳐 주셨고,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 고백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아멘으로 응답하는 신앙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믿음이며, 셋째는 믿습니다라고 확신하여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이성의 믿음에서 성령의 믿음으로, 부활의 믿음으로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가시 빠진 말과 배려, 신속한 전달로 드러난 변화

28절에서 마르다의 변화가 드러납니다. 옛날의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와 라이벌 의식이 있어 말에 가시가 있었고, 누가복음 10장 38-42절의 장면에서도 마리아에게 일을 거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마르다는 마리아를 많은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 가만히 불러 조용히 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동생에 대한 배려가 담긴 말입니다. 또 마르다는 메시지를 늦추거나 빼지 않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합니다.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마르다를 통해 마리아를 부르고 계셨으니, 간접적인 초청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응답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무릎 꿇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마리아는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생각할 틈도 없이 반응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이르러서도 울며 매달리기보다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했습니다. 사역보다 우선하는 것이 예배이며, 예배가 있는 기도와 찬양, 전도와 봉사가 예배 없는 것과 다르다고 강조됩니다. 마리아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한 말은 마르다의 말과 같았지만, 예배 가운데 드린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통분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이 통분히 여기시며 마음이 깊이 민망히 여기셨고, 결국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히신 장면으로, 함께 슬퍼하는 사랑이자 죽음 앞에서 일으키신 거룩한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자라고 목마르시며 고통을 겪으신 참된 인간이셨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의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셨고, 많은 고통과 질병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겪으시고 대신 짊어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으로 가셔서 죽음과 맞서 싸우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어디 두었느냐고 물으시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무덤으로 가시는 것은 죽음과 대면하고, 죽음과 싸우며, 심판과 저주에 맞서시기 위함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증언했습니다. 죽음을 향해 명령하고 도전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어떻게 정복하시는지는 이후의 말씀에서 계속 이어서 듣게 될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마르다처럼 머리로 아는 믿음을 넘어 부활의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 신앙고백 앞에서 아멘으로 응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시다.
  • 말에서 가시를 빼고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합시다.
  • 주님의 간접적인 초청에도 머뭇거리지 말고 급히 응답합시다.
  • 무릎 꿇는 예배를 먼저 드리며 기도와 봉사를 돌아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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