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요일 4:7~21)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와 행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성품이시며,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고 담대함을 줍니다.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에 따라 바뀌지 않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묻는다면 실망이나 분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실망하시고 분노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실망과 분노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문제나 행위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성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품은 상황이 어떠하든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십니다.
두려움은 죄책감에서 나오며 사랑으로 온전해집니다 (18절)
요한일서 4장 18절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두려움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아담은 벗은 것이 두려워 숨었고, 사람들은 지식과 문화와 종교와 선행의 옷으로 두려움을 감추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십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잘못된 종교적 의무감과 공로의식으로도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두려움을 통해서도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찾아오는 사랑입니다 (9-11,19절)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기 전부터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었고, 먼저 달려가 아들을 껴안았습니다.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베푸시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나아갑시다 (16-17절)
요한일서 4장 16-17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고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벵겔은 영적 발전을 네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두려움도 사랑도 없는 단계, 사랑 없이 두려움만 있는 단계, 사랑과 두려움이 함께 있는 단계, 그리고 사랑만 있는 단계입니다. 이 담대함은 죄를 부인하는 뻔뻔함이 아니라, 죄를 알면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에 심판 앞에서도 담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와 서로에게 향합니다 (7-8,11,20-21절)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온전히 존재하며, 독생자의 파송과 성령의 임재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요한일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본문을 씁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메마른 사랑을 자책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믿을 때, 사랑이 다시 흘러나오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이 나를 실망과 분노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믿읍시다.
- 두려움을 옷으로 감추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시다.
- 하나님의 사랑을 공로가 아닌 은혜로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합시다.
-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음을 기억하며 메마른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읍시다.
- 받은 사랑을 서로에게 흘려보내며 형제자매를 사랑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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