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불가능에 도전하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불가능의 문을 여시며, 그분의 구체적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여리고성의 기적을 이루어 주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이루어집니다
역사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사람이 계획하고 행동하여 만드는 역사가 있고, 천재지변이나 역사의 흥망처럼 자연의 섭리와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분의 주권과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천지창조가 그러하고, 노아의 홍수도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물을 사용하신 사건입니다. 백 세에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생식이 불가능한 나이에 하나님께서 불가능의 벽을 뚫고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창조하실 뿐 아니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불가능의 문을 여십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온다는 소문에 굳게 닫혔고, 그 모습은 난공불락의 트로이성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트로이성은 지혜와 기술, 속임수로 열렸지만,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를 내 손에 붙이리라고 말씀하셨기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강대국도 무너질 수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일은 실수도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와 역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 자기의 실수와 허물을 하나님께 핑계 대지 않도록 먼저 깊이 반성하는 내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전은 상상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가장 큰 위기는 하나님의 뜻을 내 생각과 상상으로 혼동하는 데서 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 없이 나도 믿으면 걸을 수 있다고 한강변에서 뛰어든다면 물에 빠질 뿐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를 부러워하여 똑같이 대중 전도를 흉내 낸 한 사람은 번번이 실패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에게 맞는 은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부러워서 따라 하거나 남을 반복하는 것은 비전이 아니며, 비전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비전은 구체적이고 창조적이며 말씀 중심으로 갑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방법은 세상의 전쟁 개념을 벗어난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지시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엿새를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며 마지막에 나팔을 길게 불고 백성이 함께 외치라는 명령은 정확한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자기 구미에 맞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전했으며, 언약궤를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앞에 서도록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무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따르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새벽에 행동하는 백성이 역사를 만듭니다
백성은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외쳐야 할 때 외쳤으며, 돌라고 하면 돌고 돌아와 쉬라고 하면 쉬었습니다. 이처럼 훈련된 하나님의 군사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백성은 해 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 순종으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새벽에 임하고 죄의 문화는 밤의 문화이기에, 여리고성이 무너진 비결도 새벽의 순종에 있었습니다. 불가능 앞에서도 말씀을 따라 새벽에 행동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상상력이나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따르지 맙시다.
- 불가능해 보이는 여리고성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고 도전합시다.
- 다른 사람을 카피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구체적인 말씀 안에서 창조적으로 순종합시다.
-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습관을 힘써 세워 봅시다.
-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마음의 두려움을 내려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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