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화있을 진저(1)
예수님의 '화 있을진저'는 저주가 목적이 아니라 축복과 구원을 향한 사랑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 안에 머물며, 저주를 자청하지 않도록 합시다.
축복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경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신 것은 저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여덟 번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에게 축복을 명하십니다. 저주는 축복을 거부한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경고 속에는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가슴 찢어지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천국문을 닫아두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 (13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천국문을 닫아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막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교만하고 삐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잘못된 열정과 변질된 복음이 지옥으로 이끈다 (15절)
어떤 사람은 바다를 건너고 육지를 건너며 열심을 냈지만, 사도 바울이 되기 전 사울처럼 잘못된 열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려 했습니다. 이단들도 몸과 마음과 돈을 다 바쳐 헌신하지만 결과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과 23절이 말하듯 주여 주여 하는 것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성경을 잘못 가르쳐 사람을 이단에 빠뜨리는 자에게 저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지옥에 가고, 하나님을 잘못 믿어도 지옥에 갑니다.
타이틀과 금을 좇는 소경 인도자에게 임하는 저주 (16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신앙보다 금과 직책에서 오는 인기와 유익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속을 수 있어도 속지 않으시며, 종교적인 쇼와 외형적 성공에 안주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구렁에 빠지듯,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이 백성을 인도해야 합니다. 헌금도 액수보다 마음의 태도가 중요하며, 타이틀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애통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기
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마음이 가난한 자로서 자기 죄를 보고 애통해야 합니다. 부유한 사람은 애통하지 못하고, 자기 안의 비참한 영혼을 볼 때 가슴을 치고 우는 눈물이 참된 눈물입니다. 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온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를, 온유한 자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저주가 사라지고 축복이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이 우리 인생을 이끌어 주시기를 구합시다.
-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내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돌아봅시다.
- 우리의 태도와 삶으로 사람들이 천국문 앞에서 막히지 않고 들어올 수 있게 합시다.
- 타이틀과 금이 아니라 신앙의 진실함과 마음의 태도를 먼저 살핍시다.
- 내 죄를 보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을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