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6]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 (마 3:13~17)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들려온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아버지의 음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주어진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날마다 붙잡고 삽시다.
우리를 붙잡아 주는 음성, 루터의 세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규정하고 지탱해 주는 음성을 마음에 안고 살아가며, 어떤 음성을 새기느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소심하고 죄책감과 염려에 시달렸고, 밤마다 마귀가 "이런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사람이냐"라며 정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마다 루터는 책상 위에 분필로 라틴어 '바프티자투스 숨', 곧 "나는 세례를 받았다"라고 써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죽어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산 자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루터를 붙든 것은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선언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음성이었습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신 예수님
요단강에는 죄를 자백하고 물에 들어갔다 나옴으로 씻음을 확신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 줄에 서 계셨습니다. 요한은 놀라 "제가 오히려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하며 막아섰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는 도덕적 흠 없음이 아니라 이사야서에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려 죄인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인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오셨기에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고 동행하며 사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서가 아니라 아들이 내려오심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삼위 하나님이 나타나시다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세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하늘이 열렸습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어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습니다. 창조 때 수면 위를 운행하신 영과 홍수 후 노아의 비둘기를 떠올리게 하는 새 창조의 시작이며,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순결과 희생으로 이루어질 창조입니다. 셋째, 하늘에서 성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성부의 음성, 비둘기 같은 성령, 세례받으시는 성자가 한 장면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음성에 담긴 뜻과 예수님을 붙든 힘
"내 사랑하는 아들"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를 바치라"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삭은 칼을 면했지만 예수님은 면하지 않으셨고,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시편 2편은 왕의 대관식 노래이고, "기뻐하는 자"는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을 가리키므로 이 음성은 칭찬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의 길로 들어서는 취임 선언입니다. 이 음성은 병도 고치시고 설교도 하시기 전에 들렸으니 사역보다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하며 정체성을 공격했을 때도, 변화산과 겟세마네와 골고다에서도 이 음성이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인정 속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 음성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 들린 음성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자녀에게 주어집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신앙은 늘 불안하지만 이미 받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사탄이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냐"고 속삭일 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는 부족하고, 아버지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 무엇을 할까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말씀의 체험과 가정·교회·선교
2011년 담임목사 청빙 때 후보로 지원할지 기도하던 중 이 말씀이 책의 발문, CGN 방송, 수요예배 찬양으로 반복해서 다가왔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고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때 서 있던 자리는 1980년대 말 대학 청년 수련회로 온누리교회를 처음 방문했던 밤, 성령 충만한 자매가 이 말씀을 외치며 이름을 불러 깨웠을 때 들어서서 섰던 바로 그 위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저뿐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는 음성을 들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음성을 함께 듣는 자리이며, 그 음성을 열방에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아침에 눈을 뜰 때 무엇을 할까보다 먼저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음성을 마음에 새깁시다.
- 사탄이 정죄하며 속삭일 때 스스로 변명하기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붙잡읍시다.
-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신앙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 자녀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음성을 들려줍시다.
-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견주지 말고 함께 이 음성을 듣고 열방에 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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