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오늘이 그 날 입니다 (삿 4:1~15)
하나님의 명령은 이미 주어졌고 하나님은 이미 앞서 가 계십니다. 손해를 따지며 미루지 말고, 사랑하는 분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신호를 알고도 움직이지 못한 사람들
큰 사고 하나 앞에는 작은 사고 29개와 300번의 해프닝이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신호는 먼저 옵니다. 그런데도 알면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닥은 1975년에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도 필름으로 버는 돈 때문에 서랍에 넣었고 2012년에 파산했습니다. 2005년에는 IMF 수석 경제학자가 금융 위기를 경고했지만 호황을 누리던 은행가들이 웃어넘겼고, 3년 뒤 리먼 브라더스가 부도를 맞았습니다.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손에 쥔 오늘의 이익입니다. 어거스틴도 고백록에서 정결함을 구하며 "다만 아직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철전차 900대 앞에서 계산한 이스라엘
에훗이 죽자 이스라엘은 또다시 악을 행했고, 하나님은 하솔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습니다. 야빈에게는 철로 만든 전차 900대가 있었습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던 때라 철을 다루는 것은 지금의 반도체 독점과 같은 힘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에 살았지만 농사를 지으려면 전차가 장악한 평지로 내려가 씨를 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였고,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2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는가 하는 물음이 이어집니다.
성문을 지나 들판으로 올라간 백성들
드보라 소개에는 이상한 점이 셋 있습니다. 다른 사사에게 있는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일으키셨다"는 공식이 없고, 원문에는 "사사"라는 명사 없이 "재판하고 있었다"는 진행형만 있습니다. 또 재판은 장로들이 앉는 성문에서 해야 하는데(출 18장, 신 16장) 드보라는 종려나무 아래 들판에 앉아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성문을 지나 그녀에게 "올라갔는데", 이 히브리어 '알라'는 성전에 올라가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쓰는 단어입니다. 20년간 장로들의 이름과 판결은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성문은 조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고, 말씀은 살아 있었지만 성문이 아닌 들판의 드보라에게 있었습니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은 남편을 성문에 앉히는 사람이었으니, 드보라는 시대의 기준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는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고, 판결받을 곳 없는 백성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 앉힌 것은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자리를 기억하고 사용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35장에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베델의 상수리나무 밑에 묻혔다는 한 절이 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라헬이 죽는 중요한 장에 이 한 절이 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창세기 24장에서 리브가를 따라 낯선 땅으로 왔고, 리브가가 죽은 뒤에도 야곱 곁에 남아 평생 남의 집 아이를 키웠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무를 '알론바굿', 곧 통곡의 나무라 부르셨고 그녀를 "리브가의 유모"가 아닌 이름 "드보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야곱의 가문이 이어졌습니다. 사사기의 드보라는 같은 이름, 같은 나무 아래에서 무덤이 아니라 법정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은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용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십니다. 하나님은 자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머무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미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라 내려간 바락
말씀은 20년 동안 선포됐지만 나라는 짓밟혔습니다. 듣는 사람은 많았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한 말 "여호와께서 명령하셨다"는 완료형입니다. 새 계시가 아니라 바락이 이미 알고 있던 명령이었습니다. 14절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신다"도 직역하면 "앞서 가셨다"입니다. 순종은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20년을 움직이지 못한 바락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비가 올지, 이길지, 살아 돌아올지 모르고 내려갔습니다. 순종은 손해가 아니라 사랑할 기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 교수님은 좋아하는 것은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했고,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고도 금을 내놓았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을 쏟아붓고도 손해라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지 못한 20년을 따지지 않으시고 마침내 내려간 한 걸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손익을 계산하며 미루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 손에 쥔 현실이 너무 좋아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는지 점검하고 하나님께 내려놓읍시다.
- 순종을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회로 여기고,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라 오늘 한 걸음 나아갑시다.
- 성문 밖 같은 이름 없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살아내며 그 자리를 작다 여기지 맙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