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영상] 핍박자를 증인으로 부르시다 (행 9:1~19)

2024.05.12이재훈사도행전 9:1~19

교회를 가장 극렬히 핍박하던 바울을 증인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서 누구도 제외되지 않음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반대하는 이들을 찾아 부르십니다.

교회를 대적한 안티 기독교의 원조 (1-2절)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이어서, 예수님을 만나 사울이 바울로 개명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헌신했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일에 앞장서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도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걸어서 일주일 이상 걸리는 240km 거리의 큰 도시 다메섹까지 가서 그들을 잡아오려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지시를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해 공문의 위임을 받으려 했으니,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앞장선 열정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제거하는 일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모습 앞에서 격분한 바울

바울이 더 강하게 나선 이유는 하나는 바리새인으로서 가장 앞선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과잉 행동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두려워하며 믿음을 철회하기는커녕 당당하고 평온하고 온유했으며,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용서하는 기도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옳다고 믿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도리어 더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사도행전 26장 9-11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가두고 처벌했으며 격분한 나머지 다른 나라 도시까지 찾아가 핍박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과잉 행동은 이 시대에도 많이 일어납니다.

가장 강한 핍박자를 부르신 이유

택하여 부르신다는 것은 함께해 주시고 은사와 지혜와 계시를 주신다는 뜻이며, 큰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핍박받던 성도들 가운데는 바울을 빨리 심판해 달라고 기도한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바울을 부르신 것은 가말리엘에게 배운 율법 지식 때문도, 헬라어 실력 때문도, 다문화 경험 때문도 아니고, 그가 가장 극심한 핍박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는 원수와 적 같은 이들도 제외되지 않으며, 은혜와 긍휼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삶으로 보이신 분이어서, 바울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빛 가운데 인격적으로 찾아오신 주님 (3-6절)

다메섹 가까이에서 태양빛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이 바울을 둘러싸 그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이 빛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두운 밤길에서는 옷이 더러운 줄 모르다가 밝은 곳에서 깨닫듯이, 영혼에 빛이 비칠 때 비로소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알게 됩니다. 주님은 "사울아 사울아" 하고 이름을 두 번 따뜻하게 부르셨고,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 물으셨듯이 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시려고 "왜 나를 핍박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를 땅에 엎드러지게 하셨으나 인격을 무너뜨리지 않고 스스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아나니아를 통해 공동체로 들어온 바울 (11-16절)

바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기도하며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다메섹의 성도 아나니아를 보내 바울의 눈을 뜨게 하려 하셨고, 아나니아는 바울이 성도들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라며 가기를 꺼렸습니다. 그는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반감을 대표하는, 신뢰받으면서도 바울에게 완강한 리더였을 것입니다. 바울 혼자만의 체험으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이런 아나니아가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바울이 이방 사람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할 택한 도구이며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아나니아는 바울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문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사도 바울, 이기풍 목사

한국 교회 최초로 안수받은 일곱 목회자 중 한 분인 이기풍 목사는 서양 선교사들을 나라를 빼앗는 사람들로 여겨 마펫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턱을 깨뜨렸고, 장대현교회 건축 소식에는 깡패들을 동원해 현장을 부수었습니다. 마펫 선교사는 스데반처럼 온유하게 품고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꿈에서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으나 무시했습니다. 청일전쟁 때 원산으로 피신했다가 스왈렌 선교사의 우레 같은 음성에 무너져 예수를 믿게 되었고, 제주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며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바울을 부르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런 이들을 부르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고 괴롭히는 가족과 이웃에게 주님이 그들도 부르실 수 있다는 소망을 나눕시다.
  • 옳다고 믿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봅시다.
  • 나 같은 자를 불러 증인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됩시다.
  • 반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영혼들을 인내와 겸손으로 대하며 주님께로 인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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