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교회 너머의 교회(벧전 2:4~10)
교회의 위기는 핍박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을 때 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왕의 집으로 세워진 공동체이며, 그분의 덕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정체성을 잃을 때 옵니다
세상이 교회를 공격할 때 교회는 위기를 맞지 않고, 도리어 더 정결해지고 견고해지고 확장되었습니다.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는 교회를 억압하는 중국이고, 이란과 이라크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제한과 핍박이 없어 예수 믿는 것이 일상이 된 유럽과 북미, 그리고 점차 대한민국의 교회가 가장 연약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거품이 사라지고 진짜 믿는 사람만 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아는 사람이 무너지지 않듯, 교회도 정체성과 소명을 깨닫지 못할 때 중병에 걸립니다.
교회에 다니다가 교회에 갇힙니다
1998년 온누리교회 13주년 예수공동체 축제에서 하 목사님은 교회가 정체성을 잃는 이유가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다니면서 동굴에 갇힌 사람처럼 교회의 영광과 능력과 소명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교'(Churchianity)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교회라는 말이 싸우고 피곤한 곳이라는 이미지로 본질을 가려, 그 단어 없이 모여 보라고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루터도 에클레시아를 키르케로 옮긴 것이 적합하지 않았고 '공동체'로 번역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회 너머의 교회'는 익숙한 교회관을 넘어 사도행전의 교회를 이어 가자는 뜻입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9절)
에클레시아는 '~로부터'를 뜻하는 에크와 '부름을 받은'을 뜻하는 클레시아가 합쳐진 말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 성경이 정의하는 교회입니다. 내가 교회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로 선택받았고, 예수님을 믿은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결과입니다. 이를 놓치면 두 가지 잘못된 자아상이 생깁니다. 하나는 회비를 내고 내 권리와 유익을 주장하는 종교적 클럽으로 보는 것입니다. 윌리엄 템플은 교회가 유일하게 비회원을 위해 존재하는 모임이라 했는데, 다소 과장이 있어도 교회는 지상에서 가장 비이기적인 모임이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배를 버리고 교회를 세속적 봉사단체로만 보는 것으로, 클럽화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극단입니다.
산돌이신 예수님께 연결되어 한 집이 됩니다 (4-5절)
사람에게 버림받으셨으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 있는 돌이시며, 그분께 연결될 때 죽은 돌 같던 우리도 산돌이 됩니다. 모세가 명한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온 일이나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말씀도 생명 없는 것에서 생명이 나는 변화를 보여 줍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헬라어로 바위인데,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베드로의 교회관을 이루었습니다. 모퉁이 돌의 크기와 성격이 집 전체의 성질을 정하듯,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신 집에 우리 하나하나가 연결됩니다.
신령한 집은 왕께 속한 왕의 가족입니다
'신령한'은 원문에서 왕국을 뜻하는 바실레이아와 이어지는 말로, 왕께 속하고 왕이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spiritual house'라는 영어 번역은 미흡합니다. '집'으로 옮긴 오이코스도 건물이 아니라 가족과 가까운 종과 이웃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의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의 집도 같은 뜻이며, 옛 성경은 이를 권속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는 왕이 다스리고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왕의 가족으로 지어져 갑니다. 그러므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가 교회이고, 어떤 사람도 어떤 목회자도 어떤 리더십도 교회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도록 보냄받았습니다 (9-10절)
두 번째 키워드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덕, 곧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위대하심(탁월하심)을 세상에 널리 알리도록 보냄받았으며, 이것이 선교요 전도입니다. 이 소명을 잃으면 교회는 자기중심적이 되고 클럽화되고 세속화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으로서 그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보여 주어야 하고, 하나님의 집을 보여 주는 모델하우스처럼 사람들이 이 영원한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그것을 가린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40년의 사역에도 여전히 부족하니, 익숙한 교회를 넘어 거룩한 제사장으로 쓰임받는 교회가 되기를 추구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가 교회를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교회가 되었음을 기억합시다.
- 교회를 내 유익을 위한 클럽이나 세속적 봉사단체로 여기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 산돌이신 예수님께 연결된 왕의 가족으로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을 교회의 왕으로 모십시다.
- 어둠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힘씁시다.
- 익숙한 교회에 머물지 말고 사도행전의 교회를 이어 가는 교회로 쓰임받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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