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생수를 주옵소서
예수님은 버려지고 잊힌 사마리아 여인의 편견과 상처를 정중히 받아 주시고, 그녀의 눈높이에 내려와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모르는 채 목마르게 살지 말고 예수님께 나아가 영원한 생수를 마십시다.
자신을 모르는 채 목마르게 사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가장 큰 병은 자신의 병명을 모른 채 아파하다 죽어 가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인생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모른 채 동물처럼 반복하며 살다가 죽음을 맞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버려지고 잊힌 채 살아온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문제를 스스로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예수님은 편견과 상처가 있는 자를 정중하게 만나 주십니다 (4-7절)
예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속에서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여행 중 피곤하셔서 물가에 앉아 계실 때 여인이 나타났고, 이는 하나님께는 계획된 필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여자여 나에게 먹을 물을 좀 줄 수 있겠소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셨을 때, 여인은 유대인과 남자에 대한 오랜 편견과 상처 때문에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편견과 상처에 맞서 설득하거나 충고하지 않으시고, 그녀를 천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그렇게 정중하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만나 주십니다.
눈높이로 내려가 쉬운 말로 구원을 전하셨습니다 (10-11절)
예수님은 여인의 수준에 맞추어 눈높이로 내려가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나라고 어려운 말씀을 하셨지만, 여인에게는 하나님의 선물과 그것을 아는 자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메시아라고 강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구원의 방법도 쉽게 가르치셨는데, 구한다, 찾는다, 두드린다, 바라본다, 소망한다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전도는 그 사람 눈높이로 내려가 만나는 것이며, 충고하거나 야단치거나 비판하거나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물과 생수는 다릅니다 (12-14절)
여인은 우물의 물을 얻으러 왔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른 우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우물도 모두 목마른 우물이었고, 율법의 종교 역시 율법을 지킬 의인이 없기에 영혼이 목마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이 생수는 예수님에게서 오며, 값없이 주어지고,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속죄로 주어집니다.
과거가 정리되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15-16절)
여인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호기심을 가지고, 마침내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십시오라고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현상만 고치시지 않고 본질을 치유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내 남편을 데려와라고 말씀하셨고,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해열제가 현상만 잠시 누그러뜨리듯, 종교가 현상만 고치려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가 청산되고 회개가 일어나야 구원이 이루어지며, 예수님께 붙잡힌 이상 도망갈 수 없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합시다.
- 전도할 때 상대의 눈높이로 내려가 충고하지 않고 정중하게 다가갑시다.
- 우리 영혼을 목마르게 하는 것들을 돌아보고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 예수님의 생수를 객관적 정보로만 알지 말고 주관적 경험으로 마십시다.
- 과거의 죄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회개하여 예수님께 붙잡힌 삶을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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