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패러독스 (막15:25-37)

2012.04.01반태효마가복음 15:25-37

십자가는 가장 저주받은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드러난 복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악함과 버림받음을 다 품으시고 버림받는 자리에 머무르셨기에, 백부장처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저주의 십자가가 복음이 된 역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고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지만 기독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십자가를 싫어하고, 우리 역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환영하면서도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싫어합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슈바이처는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자살하셨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절하고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의 말씀처럼 진짜 왕이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악과 잔인함을 드러낸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불의와 악함, 잔인함과 무정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입니다. 재판은 밤에 열릴 수 없고 사형은 당일 집행될 수 없는 것이 법이었지만, 예수님은 한밤중에 체포되어 아침 9시에 못 박히셨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던 입술이 이제는 '당신이 메시아라면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남을 구원한다더니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몬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던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지 않고 머무르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았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고 천사들도 그분을 구출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려오지 않고 거기 머무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자기 죄값을 지불하고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끝까지 머무르셨기에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매달린 강도조차 예수님을 모욕했고, 예수님은 욕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모든 조롱과 멸시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짐이 축복이 되었다

예수님은 아무도 돕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 계셨고, 유일한 도움은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그의 짐이 축복이 되어 알렉산더와 루포가 로마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가 되었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악함과 거절, 왕따의 상처를 십자가에서 다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버리심, 그리고 승리의 외침 (33-37절)

낮 12시부터 3시간 동안 온 땅이 어두워졌고, 예수님은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신 아들을 버리신 것은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의 어둠이었습니다. 원래 버림받아야 할 자리는 우리였지만, 예수님은 시편 22편을 붙들고 순종으로 머무르셨습니다. 이 외침은 패배의 절규가 아니라 승리의 외침이었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뒤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외침으로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이 승리의 외침 앞에서 백부장은 '이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도 백부장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고 고백합시다.
  • 내게 이익이 있을 때만 찬양하고 어려움이 오면 돌아서는 나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 함께 울어야 할 교회와 이웃의 어려움에 외면하지 말고 함께 웁시다.
  •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짐을 감당하는 순종의 자리에 서십시다.
  • 거절과 왕따의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치유와 회복을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서빙고 3부 예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