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기적 (행 13:42~52)

2016.02.14이재훈사도행전 13:42~52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도덕적 기적은 역사를 보는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이방인을 향한 구원 계획을 깨달을 때 일어납니다. 이 기적은 무관심에서 갈망, 찬양을 거쳐 말씀의 통로가 되는 단계로 나타납니다.

기적에는 물리적 기적과 도덕적 기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두 가지 기적이 교차하며 나타납니다. 첫째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물리적 기적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되는 일, 감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는 일, 귀신이 떠나고 환자와 장애인이 고침을 받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한 성도를 통해 전해진 말씀으로 사람의 삶이 변하는 도덕적 기적입니다. 존 라일 목사는 이것을 도덕적 기적이라 불렀습니다. 자기 소유를 필요에 따라 나누는 일, 스테반 집사처럼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죽는 일이 그 예입니다. 하나님께는 물리적 기적이 더 쉬울 수 있지만, 사람 안의 도덕적 기적은 자유의지가 있어 반항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도덕은 조화를 넘어 목적을 향해야 합니다

C.S. Lewis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도덕을 세 차원으로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과 공평하고 정의롭게 조화를 이루는 차원, 둘째는 자기 내면을 정돈하여 건강하게 사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셋째 차원은 창조된 우주와 역사, 인류가 나아가는 목적과 의미입니다. 여러 배가 편대를 이루어 항해하는 선단에 비유하면, 배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것, 각 배의 엔진과 내부가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배가 인천항이 아니라 상하이나 홍콩으로 가고 있다면 실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이 우주와 역사가 어디로 가는지, 자기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깨달을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은 회당에서 역사를 관통하여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16-21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아직 물리적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바나바와 사울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때부터 바나바보다 바울이 주도적으로 사역하게 되었고, 이름도 히브리식 사울에서 헬라식 바울로 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출애굽에서 시작해 광야, 사울왕과 다윗왕, 세례 요한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구약 역사를 관통하며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이는 스테반 집사가 전한 방식과 같습니다. 바울은 대상에 맞추어 회당에서는 구약을 인용했고, 아레오바고에서는 구약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종교적이고 문학적인 이야기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설교의 핵심 단어는 '약속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종교적 위인이 된 분이 아니라, 구약의 약속을 따라 오신 분입니다. 메시아 예언은 200여 개가 넘고, 베들레헴 출생, 고난받는 종, 부자의 묘실에 안치됨 등이 모두 이루어졌으니,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역사를 보는 눈을 열어 줍니다

성경은 위로를 주거나 잠을 청하는 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역사를 보는 눈을 열어 주는 책입니다. 인류의 기원과 역사의 방향, 끝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성경뿐입니다. 세상의 역사가는 지나간 일을 해석할 뿐이지만, 성경은 미래를 예언하고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보여 줍니다. 바벨론, 시리아, 로마 제국의 종말도 구약의 예언에 비추어 해석됩니다. 사람은 이야기에 의존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창조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읽을 때 분별력을 얻고 참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에게 일어난 도덕적 기적도 바울의 말씀을 들으며 역사를 보는 눈이 열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은 무관심, 갈망, 찬양, 통로로 나아갑니다 (42-49절)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의 반응은 점차 변해 갔습니다. 처음에는 바울이 손짓하며 들어 달라고 할 만큼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더 전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다음 안식일에는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습니다. 이는 재미 때문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끊임없이 질문하듯,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사모하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땅끝까지 구원을 이루시는 분임을 깨닫고 말씀을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말씀이 그 지방 전체에 두루 퍼졌습니다. 말씀에 대한 무관심에서 갈망과 찬양을 거쳐 말씀의 통로가 되는 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시기심은 말씀을 막고 자기 권위를 세웁니다 (45절)

말씀이 확산되자 일부 유대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바울의 말을 반대하며 모욕했습니다. 이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하여 말씀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방인이 몰려와 회당의 주도권을 잃는 것을 싫어했고, 복잡해지는 것을 귀찮아했습니다. 결국 도시의 지도자들과 경건한 부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냈습니다. 이들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습관,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교회도 말씀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보다 나의 권위가 얼마나 작용하는지가 더 중요해질 때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말씀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리를 돌아보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 역사와 우주를 하나님께서 움직이고 계심을 기억하며, 나의 인생이 향하는 목적을 함께 붙듭시다.
  • 성경을 위로나 수면제가 아니라 역사를 보는 눈을 여는 말씀으로 읽어 갑시다.
  • 말씀을 들은 뒤 찬양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함께 기뻐합시다.
  • 내 생각과 습관보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자리를 내어드리고, 말씀이 두루 퍼지는 통로가 되기를 힘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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