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부활 생명 (요 11:25~26)
예수님은 부활을 주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의 자연적 생명에 부어 주시는 생명 자체이십니다. 이 생명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임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그 이상의 생명이십니다 (25-26절)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부활이라는 말에 생명이라는 말을 더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일 뿐 아니라 부활 그 이상이시라는 뜻입니다. 신약은 생명을 영적 생명인 '조에'와 자연적 생명인 '비오스'로 구분합니다. 인간의 자연적 생명은 본래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어 창조되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그 생명에서 끊어져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목적은 부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의 자연적 생명에 부어 주시는 데 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제가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주시려는 생명을 놓친 대답이었습니다. 아는 것은 정보를 토대로 하는 것이고, 믿는 것은 살아 계신 인격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도 부활의 교리를 알고 부활이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 부활을 통해 주시는 생명의 능력은 믿지 않고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믿음으로 그분을 의지할 때 생명이 임합니다.
부활을 본 제자들에게도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고, 40여 일 동안 여러 차례 나타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베드로는 과거로 되돌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 부활이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신 것은 바로 부활의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생명은 믿음으로 전염되어 우리 안에 임합니다
C.S. Lewis는 이것을 '좋은 전염(good infection)'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쁜 바이러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육적 생명에 전염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고 증언하며, 아들을 모신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혁이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낸 논문 '크리스찬의 자유'에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과 구원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죄와 죽음과 멸망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위대한 교환'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부활을 주시는 분으로만 알지 않고 생명이신 분으로 믿고 날마다 그분을 의지합시다.
- 부활의 교리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기를 구합시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와 세상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누립시다.
-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개선하기보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 믿음으로 받은 생명을 우리의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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