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내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사랑하셔서 징계와 심판을 거치고도 끝내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우리 죄를 도말하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와 심판을 거쳐도 끈질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셨지만, 결국은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사랑은 끈질기다 못해 처절합니다. 자식과 부모 중 누가 더 힘든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많이 눈물 흘리시고 더 많이 고통을 겪으십니다. 사랑하기에 고통을 겪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것', '나의 증인과 종', '나의 택한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끊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몸만 드리고 마음은 없던 예배를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43장 4절에서 이스라엘을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2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예배는 정성도 준비도 긴장도 없이 몸만 와 있는 형식이었습니다. 번제의 양과 예물, 향품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죄짐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속이 상하셨지만, 이스라엘을 버리거나 포기하실 수 없었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죄를 도말하십니다
하나님은 25절에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나 곧 나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완전하심에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얻거나 노력해서 얻거나 어떤 종교나 철학에서 받은 구원은 불안전하고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나의 실수와 허물과 상관없이 완전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감정에 따라 오락가락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해야 합니다.
죄를 구름처럼 흩고 바다에 던지듯 없이 하십니다
구약의 여러 말씀은 하나님의 용서를 보여 줍니다. 시편 103편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시고,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처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 죄를 멀리 옮기신다고 전합니다. 이사야 44장 22절은 빽빽한 구름이 사라지듯 허물을 없애 주겠다고 하고, 미가 7장 19절은 죄악을 깊은 바다에 던지듯 하신다고 기록합니다. 배에서 빠뜨린 동전을 다시 찾을 수 없듯이, 하나님이 던지신 죄는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은 사죄 선언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남을 계속해서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내 안에 정죄받을 것이 있다는 뜻이며,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의심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고 괴롭히는 완벽주의도 불행의 자리입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나로 기억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믿음의 조상과 왕과 예언자 모두 범죄했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분노와 미움과 비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사죄 선언을 믿고 죄책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납시다.
- 자신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을 그만둡시다.
- 남을 정죄하고 공격하는 대신 이웃을 용서합시다.
- 분노와 미움과 비판을 거부하고 축복과 믿음의 말을 합시다.
- 형식에 머물지 않고 정성과 준비를 갖추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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