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더 좋은 믿음
신앙생활은 구경꾼이 아니라 땀 흘리며 뛰는 선수의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장애물과 시험을 인내로 넘어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증인들이 응원하고 있고, 우리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신앙생활은 구경이 아닌 경기입니다
바울 사도는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과 갈라디아서 5장 7절에서 보듯, 신앙은 조깅이나 행사 참여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땀 흘리며 뛰는 일입니다. 운동경기는 즐거운 유희가 아니라 고통과 투쟁이며 자기 극기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세상과의 싸움이며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경기장의 구경꾼은 비판하고 소리 지르지만 고난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구경꾼으로 머무는 교인이 많아졌지만, 신앙은 실전에서 뛰는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분명한 결승점이 있습니다 (2절)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코스나 관광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과 목적이 있으며, 그 결승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김윤국 목사님의 예화처럼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지듯, 신앙도 뒤돌아서거나 멈추면 이미 넘어진 것입니다. 현대인이 의미 없이 방황하는 이유도 절대 가치가 없기 때문이며, 교회는 예수 안에 있는 참 생명의 확신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 직책, 봉사, 헌금 자체가 목표일 수 없고 목표는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야 합니다 (1절)
경기 선수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벗고 뛰듯이, 신앙생활에도 나를 무겁게 하는 지위, 과거의 화려한 경력, 자존심, 재물, 똑똑함 같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담배, 술, 도박 같은 나쁜 습관도 끊어야 합니다. 또 게으름과 나태, 불규칙한 생활로 생긴 영적 비만도 빼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끊고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죄이며, 그중 가장 큰 죄는 불신앙입니다. 많은 믿음의 증거가 있음에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를 얽매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구경꾼에서 벗어나 예수를 영접하고 게임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인내로 장애물을 넘어 끝까지 달려갑니다 (1절)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담대함과 용기, 기다림과 인내로 사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처럼 시험은 믿음의 시련으로 인내를 만들어 내며, 인내는 온전하고 부족함 없는 사람을 이루게 합니다. 인내는 체념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장애물이 없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애물을 계속 넘어 달리는 경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의 소외감이나 상처, 부부 문제 같은 시험이 있어도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며 뛰어넘어야 합니다.
믿음의 증인들이 응원하고 예수님이 모델이십니다 (1-3절)
우리 주위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곧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너 혼자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증인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모세처럼 실패했어도 다시 일어나라는 격려가 들려옵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라보는 대로 닮아가므로 원수를 미워하면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니,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분명한 목표를 흔들림 없이 향해 가셨고, 오해와 모욕을 견디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를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구경꾼으로 머물지 않고 신앙의 경기에 직접 뛰어듭시다.
- 신앙의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예수를 닮아가는 일을 점검해 봅시다.
- 나를 무겁게 하는 지위, 자존심, 나쁜 습관과 나태함을 벗어 버립시다.
- 시험과 상처 앞에서 머물지 말고 넘어서며 끝까지 인내합시다.
- 어려울 때 예수님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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