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성령께서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그 성령으로 부활을 믿을 때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약속의 기도가 우리 안에 생깁니다.
보혜사와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에서 성령님을 두 가지로 표현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책망은 꾸짖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해 고치고 깨닫게 하는 긍정적인 역사입니다. 내 안에 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내 선행이 걸레와 같은 위선이었음을 알게 되며, 심판이 있음을 알아 겸손해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자의로 말씀하지 않고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장래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두 성령님의 공통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는 영적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6-18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제자들도 깨닫지 못한 것은 성령이 임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이성으로 이해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은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철학, 사상, 윤리, 도덕을 살펴보아도 부활을 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부활 이하의 것이며, 참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가르칩니다.
부활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했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들은 장애물이 제거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음으로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애굽의 종교가 무덤을 만드는 데 일생을 쓴 것과 달리, 예수님의 부활로 기독교는 무덤과 절망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빈 무덤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세계로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기뻐하는 종교이며, 이 기쁨은 감옥에 가두어도, 굶겨도, 고문을 해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부활로 하나님 앞에 직통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가 끝이었다면 더 갈 곳이 없었겠지만, 부활이 있기에 하나님 앞으로 대로가 열렸습니다. 부활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부활 이전의 기도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의 기도이지만, 부활 이후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기도입니다. 약속의 기도는 응답을 믿기에 기도하기 전에 감사가 나옵니다. 지금은 슬픔과 목마름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축복으로 채우실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성령께서 우리의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시도록 마음을 열어 봅시다.
- 부활을 이성과 상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이해하도록 구합시다.
- 환경의 안개에 두려워하지 말고 부활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 희망의 기도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약속의 기도를 드립시다.
-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사람이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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