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나는 그에게 꽃이 되었다 (눅 19:1~10)
주님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 멈추시고, 이름을 불러 꽃으로 보십니다. 그 주님을 만난 우리도 이웃을 주님께 이끄는 나무가 됩시다.
할 수 있습니까가 아니라 하게 해 주십시오
작년 보스턴에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던 주일,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지 물었습니다. 기도하자 "너희는 왜 내게 예배드릴 수 있냐고 묻느냐, 왜 예배드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느냐"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날 설교가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 3장이었는데, 머릿속으로는 요단강을 수십 번 건너면서도 눈 소식 앞에서 고민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이 현실이 되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고, 성도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도 돈도 능력도 없다며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지 말고, "예배하게, 선교하게, 주님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시다.
외로움과 간절함이 삭개오를 나무 위로 올렸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여리고를 지나가셨고, 세리장이며 부자인 삭개오는 키가 작아 사람들 때문에 주님을 볼 수 없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을 비집고 나갈 용기는 없었지만 단념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과 권세가 있어도 유대인에게 그는 매국노이자 죄인의 괴수로 불리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무에 오르는 모습은 체면이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아온 그의 인생을 보여 줍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목마름이 우리를 이 예배 자리로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 멈추신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주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올려다보며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력한 사람 앞에서는 천천히 지나가지만, 주님의 걸음은 주님께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서 멈추셨습니다. 올해 우리가 멈추는 곳이 주님이 멈추시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나무 위에서 하나님을 내려다보는 이 장면은 삭개오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살았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지만, 주님의 말씀에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신 주님께 나는 꽃이 되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청년부 교역자로 인사하던 날, 새가족으로 홀로 일어선 자매를 2천 명 청년이 손을 뻗어 축복했고 그 자매는 내내 울었습니다. 삭개오도 난쟁이, 매국노로 불렸을 뿐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준 사람이 없었는데, 주님이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그는 주님께 꽃이 되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지만, 더 높이 오르려고 서로를 외롭게 하는 몸짓으로 살고 있습니다. 높은 가지일수록 가늘고 위태롭습니다. 주님은 "얘야, 이제 내려오너라,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시니, 참된 평안은 더 높은 가지가 아니라 주님 곁에 있습니다.
내 곁의 삭개오를 꽃으로 보는 교회
사람들은 주님이 죄인의 집에 묵으려 한다며 수군거렸고, 삭개오 외에는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이 하필 삭개오라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우리 곁에도 아무리 꽃으로 보려 해도 잡초 같은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교회에 오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 아니면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며, 그런 사람이 교회에 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도 십자가를 지는 이유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내 곁의 삭개오는 보지 못하고 먼 선교지에서만 찾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나무에서 내려와 누군가를 위한 나무가 되라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속여 얻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율법이 정한 배상은 120%인데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갔으니, 에베소서가 말하는 참된 회개입니다. 거짓말을 그만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참된 것을 말하고, 도둑질을 그만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서 주님을 내려다보던 삭개오가 주님 앞에 종의 모습으로 섰고, 사람 냄새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여전히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뽕나무는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곳이니, 우리도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이웃에게 주님을 만나게 하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기보다 "예배하게, 선교하게, 주님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시다.
- 올 한 해 우리의 걸음이 주님이 멈추시는 곳,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서 멈추게 해 달라고 구합시다.
- 더 높은 가지를 붙들고 오르던 나무에서 내려와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둡시다.
- 내 곁의 삭개오 같은 사람을 잡초가 아니라 꽃으로 보는 주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 삭개오처럼 회개의 열매로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이웃에게 나무가 되어 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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