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13:31-33)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임했고, 겨자씨와 누룩처럼 작아 보이는 시작에서 자라나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성장과 함께 주님을 고백하는 깊이와 겸손이 자라는 성숙으로 이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비유의 초점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을 때, 유대인들의 귀에 주목을 끈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가까이 왔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은 뒤에 들어갈 나라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도래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은 바로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했음을 보여 주는 표정이었습니다.
겨자씨는 작아 보여도 큰 나무로 자랍니다 (31-32절)
겨자씨는 모든 씨앗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자라면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됩니다. 겨자씨보다 작은 씨가 있으니 이 말은 식물학적 설명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킬 때 쓰던 관용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씨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주목하지 않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많은 사람이 그분을 메시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찾기 어려운 크기로 시작해 자라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수와 고백의 깊이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수적 성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고백이 깊어지는 질적 성숙으로도 자라야 합니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라비, 곧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고, 주님이라 고백했으며, 베드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모든 권세 위에 계신 만물의 주로 고백했습니다. 고백이 깊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고백이 깊어질수록 겸손이 자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한 자, 모든 사도보다 지극히 작은 자,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더 많이 지어서 그렇게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의 죄성을 더 깊이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깊은 겸손이 있을 때 하나님은 더 큰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큰 나무에 깃드는 많은 새는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영혼들입니다.
작은 누룩이 많은 밀가루를 변화시킵니다 (33절)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여인이 밀가루 서 말에 넣어 온통 부풀게 하는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서 말은 약 30리터 정도 되는 많은 양인데, 적은 누룩이 그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적은 것이 큰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작은 소금이 물 전체를 짜게 하고 작은 빛이 어둠을 밝히듯이, 소수의 믿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두세 사람이 주님 앞에 모인 작은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날마다 세상의 렌즈를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나의 고백이 날마다 더 깊어지기를 힘씁시다.
- 깊은 겸손으로 나의 죄성을 돌아보며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 전도와 선교를 의무로만 여기지 않고 생명이 있기에 자라는 열매로 삼아 실천합시다.
- 우리의 일터와 공동체에서 작은 누룩과 같은 영향력을 드러내는 성도가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