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7가지 치명적인 죄(6) - 허영 (마 6:1~4)
허영은 선을 행하면서도 빠지는 죄입니다. 교만과 두려움에서 나온 헛된 영광을 버리고, 은밀함을 훈련하며 하나님 한 분만 의식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선을 행하면서도 빠지는 허영의 죄
허영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무감각해진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SNS는 자기를 포장하고 과시하게 만들어 허영을 교묘히 감추고 장려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범인은 끔찍한 악행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는 주목받고 싶어서였다고 밝혔습니다. 허영은 선을 행하면서도 범하는 죄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신령한 교제와 긍휼이 있던 훌륭한 교회였지만 허영이 침투해 분열과 다툼이 생겼고,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서로 낮게 여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선행 자체가 아니라 가치의 중심이 내가 받는 주목으로 옮겨질 때 허영에 빠집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앞선 두 유혹을 이기신 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주목받으라는 세 번째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허영의 뿌리는 교만과 두려움입니다
고대 영성가들은 죄를 나무에 비유했고, 모든 죄의 뿌리는 교만이며 그 곁에는 늘 두려움이 붙어 있습니다. 허영은 이 교만과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교만에서 나오는 허영은 영광받을 탁월함이 내게 있다고 생각할 때 생깁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뛰어난 수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동기가 허영 때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두려움에서 나오는 허영은 정반대입니다. 탁월함은 없는데 영광은 받고 싶을 때 두려움이 일어나고, 그 없음을 다른 것으로 포장합니다. 어거스틴이 10대 때 친구들과 과수원에서 배를 훔친 것도 거절당하고 따돌림당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오늘 많은 젊은이가 버림받을까 두려워 허영의 죄를 함께 범합니다.
이미 주신 영광을 두고 스스로 영광을 만듭니다
허영에서 자랑과 위선이 나옵니다. 자랑은 장점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이고, 위선은 없는 장점이 있는 척하는 것이며, 둘은 형제처럼 함께 나타납니다. 인간은 영광에 굶주려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 자체가 이미 영광입니다.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면 다른 것에서 영광을 구하는데, 이것이 허영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자기애, 곧 나르시시즘에 빠집니다. 짐 와일더 박사의 책에 따르면 2015년 연구에서 나르시시즘 증상이 있는 목회자가 맡은 미국 교회가 9만 6,300개에서 11만 2,350개에 이르고, 캐나다 목회자는 일반인보다 그 확률이 500%에서 3000% 높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목회하면 교회는 시험에 들고 분열되며 성도는 상처받고 본질을 잃습니다. 칼빈대학의 레베카 드영 교수는 관심·인정·칭찬처럼 A로 시작하는 단어를 구하는 이 죄를 AAA 악덕이라 불렀습니다.
보이려고 행하는 의는 헛된 영광입니다 (1-2절)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5장 16절에서 선한 행실로 빛을 비추라고 하신 말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5장은 마땅히 행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을, 6장은 허영으로 자랑과 위선을 드러내는 것을 지적하며, 두 말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경건의 상징으로 여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예로 드셨습니다. 가장 의로운 행위가 가장 나쁜 동기로 허영을 채우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구제할 때 나팔을 불었고, 바리새인들은 헌금궤에 동전을 큰 소리가 나게 쏟아부었습니다. 허영은 헛된 영광(vain glory)이어서 보여지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데서 시작하고, 사람들의 칭찬과 영광을 기대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본회퍼는 영적 봉사에 대한 인간적 보상이 봉사를 타락시키므로 인간은 죄뿐 아니라 자신의 봉사에서도 구원받아야 하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과 이웃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허영은 물이 새는 항아리와 같습니다.
은밀함을 훈련하고 자신도 의식하지 마십시오 (3-4절)
허영을 벗어나는 첫째 길은 은밀함의 훈련입니다. 참된 영성은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시간과 장소와 생활에서 드러납니다. 선행이 알려지는 것이 죄는 아니고, 눈에 띄려고 선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모른다 해도 이 일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선행을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보 운전자는 운전하는 자신을 의식하지만 익숙해지면 목적지가 중요해지고, 모국어를 쓸 때 한글을 말한다고 의식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의 코람데오로, 세상의 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한 분만 의식하고 그분의 보상만 기대합니다. 호세아 4장 7절과 하박국 2장 16절처럼 하나님은 허영으로 만든 영광을 수치로 바꾸십니다. 허영은 시대의 죄이자 사회적 악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선을 행하고 죄를 이길수록 허영에 빠지기 쉬움을 기억하고 더 조심합시다.
- SNS에서 나를 포장하고 과시하려는 마음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 내 안의 허영이 교만에서 나왔는지 두려움에서 나왔는지 살펴봅시다.
- 아무도 모른다 해도 이 일을 할 것인지 물으며 은밀함을 훈련합시다.
- 선행을 의식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한 분 앞에서 동기를 살피며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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